불타는 여름을 더욱 불타오르게 하여 여름을 정열의 극으로 몰아가는 나무가 있으니 일러 ‘배롱나무’, 한자명으로는 ‘목백일홍(木百日紅)’, ‘자미(紫薇)’ 또는 지방에 따라 간지럼나무, 백일홍나무, 백일홍낭(제주) 등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영명은 Crape-myrtle, Indian lilac이라고도 한다는데, 옛어르신들은 나무줄기가 매끄럽기 때문에 여인의 나신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대갓집 안채에는 심지 않았던 나무다.

디딜방아가 남녀교접을 연상시킨다 하여 집안에 들이지 않고 골목어귀에 두었던 이유와 비슷하다.

그러나 사찰의 뜰이나 선비들이 공부하는 서원 주변에는 많이 심었다고 하니 그 또한 아이러니컬하다.

사찰의 뜰에 많이 심었던 이유는 배롱나무가 껍질을 다 벗어 버리듯 스님들 또한 세속의 때를 완전히 벗어버리라는 뜻이라 하고, 서원 주변에 심는 것은 청렴을 상징하기 때문이라 한다.

옛부터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하여 권력이 10년이상 지속되는 일 없고 열흘이상 붉은 꽃은 없다며 권력과 세상 아름다운 것들의 유한함을 말하지만, 배롱나무의 꽃은 백일을 가니 이러한 말을 무색케 한다.

배롱나무에 얽힌 전설 한 토막 들어보고 가자. 옛날 한 여인과 사룡이 사랑하고 있었는데, 섬에 사는 이무기가 질투해 훼방을 놓으려고 나타났다.

사룡은 여인과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이무기와 목숨을 건 혈투를 벌이게 되는데, 둘은 사룡이 사는 뭍과 이무기의 섬 사이 바다 위에서 싸움을 벌이기로 했다.

사룡은 여인에게 반드시 이무기를 물리치고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면서 “싸움에서 지면 뱃전에 붉은 깃발이 걸려 있는 것이고, 이기면 출발할 때 단 흰 깃발을 그대로 걸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고 떠났다.

그날부터 여인은 바닷가 높은 절벽 위에 나가 사룡의 배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고, 며칠 뒤 사룡의 배가 수평선 너머로 나타났다.

차츰 배가 다가오자 가슴 졸이던 여인은 깃발부터 살폈는데, 뱃전에서 나부끼는 깃발은 붉은 깃발이었다.

희망을 잃은 여인은 그대로 절벽 아래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다.

잠시 후 사룡이 탄 배가 바닷가에 도착하였고, 긴 싸움에 지친 사룡은 여인을 찾았으나 바다에 몸을 던진 뒤였다.

의아한 마음으로 뱃전을 돌아보던 사룡은 여인이 바다에 몸을 던진 까닭을 알아내고 땅을 치며 후회했다.

  뱃전에 걸린 깃발이 선명한 붉은빛이었다.

자신의 칼에 찔려 몸부림치던 이무기의 피가 흰 깃발을 붉게 물들였던 것이다.

며칠 후 물에 떠오른 여인의 시신을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는데, 이듬해 봄 무덤에서 곱고 매끄러운 껍질의 나무 한 그루가 돋아났다.

여름이 되자 그 나무에서 붉은 깃발에 맺힌 한을 풀기라도 하듯 붉은 꽃이 피어나 오래도록 사룡의 곁에 머물렀다고 하는데, 이 꽃이 바로 배롱나무다.

배롱나무를 심은 사람이 죽으면 3년 동안 하얀 꽃이 핀다는 속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매우 충직한 나무다.

꽃말이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인데, 벗이나 사랑하는 이가 떠난 후에 그리워하지 말고 떠나기 전에 최선을 다해 보라.<한국도로공사수목원 연구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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