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다는 것은 무엇일까? 눈을 뜨고 있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네덜란드 화가 브뢰겔의 소경이라는 그림을 보며 생각한다.

소경 여섯이 무리를 지어 찬바람 이는 세상의 무대를 건너가는 그림이다.

오이디푸스가 두 눈을 다 잃고서야 비로소 볼 수 있는 혜안을 얻은 것처럼, 소경 한 사람이 그림 밖의 나를 쏘아 본다.

나는 과연 눈 뜬 자인가?습관처럼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죽게 될 것이다.

의식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죽음은 삶 속의 일부분일 것이다.

아니 그가 산 사람의 절정이 죽음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아픔과 고통이 두려워 수면상태의 삶을 지향한다.

붓다와 예수는 왜 끊임없이 잠에서 깨어나라고 외쳤던가? 예수는 “누구든 어린 아이와 되지 않고는 신의 왕국에 들어 갈 자가 없다”고 말했다.

이는 순수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브뢰겔의 그림에 있는 음푹 패인 눈두덩은 빛과 어둠이 고루 발라져 있다.

  어쩌면 진정한 순수를 되찾는 유일한 방법은 순수를 잃어버리는 것 속에서 생길지도 모른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잃고서야 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알게 된다.

물을 벗어나 모래 바닥을 경험한 물고기가 소중한 바다의 소중함을 아는 것처럼 말이다.

철학자 ‘베이컨’의 ‘우상론’은 만인이 인정하는 지식들이 절대적인 척도로 착각하고 있으나 그것은 하나의 우상적인 사고일 뿐이라는 얘기다.

동굴에서 탄생되는 우상적 사고는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대중이 떠들고 사람들이 상품화할 때 그것이 진리인 듯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또한 공동으로 인정하는 지식이 절대적 척도가 있는 듯 착각하고 있으나 그것도 우상적이라는 것이다.

과거의 편견이나 선입관을 우상론으로 돌린 베이컨은 ‘경험적’이고 ‘귀납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경험을 통해 진정 참됨을 알아내는 것,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습관적으로 사는 무의식, 그곳에서 걸어 나오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용기가 필요한가. 아무도 끊을 수 있는 쇠사슬을 본인 자신만이 끊을 수 있을 것을 알아차리고 행한다는 것은 더 큰 용기있는 자만이 할 수 있다.

소경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브리겔의 소경은 커다란 운명의 수레바퀴에서 회전하듯 공허하고 처참하다.

이 그림이 보여주는 비극은 눈뜬 소경들에 대한 우리들에 대한 비유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의 어리석은 경험들이 바다임을 알아차린 물고기와 같기를, 소경의 틈새에서 자신의 쇠사슬을 알아차리고 스스로 끊을 수 있기를 꿈꾸며, 물질이 욕심들이 나의 눈을 멀게 하고 있지는 않는지…. 참된 ‘눈’에 대한 진언을 브뢰겔은 이처럼 처참한 ‘소경’의 그림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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