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환이 자유형 400m 금메달에 이어 200m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마린 황제' 박태환(19, 단국대)은 12일 국가수영센터에서 벌어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4초85를 기록하며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자유형 400m 금메달 이후 내심 2관왕을 노렸지만 '수영천재' 마이클 펠프스(23, 미국)의 벽을 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베이징올림픽 5일차인 12일 오후 수영 남자 자유형 200m 결승에서 1분44초85로 아시아신기록(종전 1분45초99)을 세우며 2위, 은메달을 차지한 박태환(19, 단국대)이 중국 베이징 코리아하우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두개의 메달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시스

때문에 박태환의 올림픽 2관왕 도전은 마지막 출전 종목인 자유형 1500m로 미뤄졌다.

하지만 박태환은 한국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에 이어 은메달까지 추가해 명실상부 아시아 최고의 '자유형 인간어뢰'로 등극했다.

게다가 역대 올림픽 수영에서 남자 다관왕을 차지한 아시아 선수는 단 2명에 불과해 이날 박태환의 선전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실감할 수 있다.

올림픽 수영에서 아시아 선수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그동안 불가능에 가까웠다.

메달을 딴다는 것 자체도 어려운 일이었다.

백인들에 비해 불리한 신체조건과 환경 등이 가장 큰 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올림픽 수영 다관왕에 오른 2명의 남자 동양인이 있다.

모두 일본인이다.

미야자키 야스지(1916~1989년)는 지난 1932년 LA올림픽 남자 자유형 100m와 계영 800m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 동양인 최초로 올림픽 수영에서 2관왕을 거둔 선수가 됐다.

당시 일본은 미야자키의 금메달 2개에 힘입어 LA올림픽 수영 부문에서 총 12개(금5-은5-동2)의 메달을 따내 10개(금5-은2-동3)를 따낸 미국을 제쳤다.

요즘 같으면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1930년대는 일본이 제국주의 열강으로 군림하던 때로 수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비록 2관왕은 아니지만 1932년 LA올림픽의 기타무라 구스오(남자 자유형 1500m),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테라다 노보루(남자 자유형 1500m)도 수영강국 일본을 대표하는 선수들이었다.

이후 오랜 침체기를 거쳤고 1956년 멜버른올림픽에서 후쿠가와 마사루가 평영 100m에서 금메달을 따냈고 ,1972년 뮌헨에선 다구치 노부다카가 평영 100m를 차지했다.

지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는 '수영 영웅' 기타지마 고스케(26)가 평영 100m와 200m를 석권, 2관왕을 차지했다.

기타지마는 이번 베이징올림픽 평영 100m에서 금메달을 차지했고 200m에서도 금메달을 노려 2개 대회 연속 2관왕에 도전하고 있다.

아시아인들에게 '남의 잔치'로만 보였던 수영이 박태환과 기타지마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뉴시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