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귀신 이야기


손 끝에 전율이 느껴진다. 미세한 진동이 손끝을 타고 올라와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한 바퀴 돌고나면 스펀지가 물을 빨아 들이듯 그렇게 접신이 된다.

접신이 되고 난 뒤 ‘후~’ 하고 긴 숨을 뱉으면 그 때부터는 내가 쉬는 숨이 아니다. 죽은 영혼이 내 몸에 실려 오랜만에 뱉는 길고 긴 한숨이다. 죽은 영혼은 잠시나마 영매인 내 몸을 빌려 자신의 식구 또는 친구나 애인에게 메시지를 전하려고 한다. 이 때 죽은 영혼의 목소리나 행동을 똑같이 표현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몸을 통해 죽은 자를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접신하는 영혼이 병으로 죽거나 사고로 죽은 경우, 접신 순간 나 역시도 그 영혼과 같은 극도의 고통을 느낀다. 접신을 하는 일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닌 이유다. 특히 자살한 영혼을 접할 때면 고통은 극에 이른다.

한낮 무더위 속에 손님이 찾아왔다. 깔끔한 외모의 L양은 슬픈 눈을 가지고 있었다. 법당으로 들어와 L양과 마주보고 앉았다. L양의 뒤로 어른거리는 검은 그림자…. 그 그림자는 L양의 등 뒤에 숨어 나를 자꾸 훔쳐봤다.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집안이 상을 당한지 얼마 안되셨네요.” “네. 한 5개월 정도 됐어요.”

그 순간 자신의 애기가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숨어 있던 그림자가 내 앞에 모습을 드러 냈다. 젊은 남자 영혼이었다. 영혼은 나에게 접신을 시도했다. L양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듯 했다.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들듯 영혼이 내 몸 속으로 스며 들었다. 영혼의 슬픔과 고통이 한 순간에 느껴졌다. 눈물이 흘렀다. 영혼이 입을 열었다.

“누나, 미안해. 자살해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누나.”

L양이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L양은 내 손을 붙잡고 죽은 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하염없이 울었다. L양의 동생은 사업에 실패하고, 믿었던 여자친구마저 등을 돌리자 가족과 한 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다고 했다. 동생은 누나인 L양에게만 가끔씩 연락을 했는데, 동생이 죽는 날 아침에 핸드폰 문자 메시지 한 통을 받았다고 했다.

‘누나 미안해.’

문자 때문에 하루 종일 마음이 무거웠던 L양은 직장 일을 마치는대로 동생에게 달려 갔다. 그러나 동생은 이미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뒤였다. 동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목숨을 끊었고 미안하다는 문자가 마지막 유언이 될 줄은 몰랐다고 했다.

자살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다. 자살한 영혼은 절대 스스로 저승에 들어갈 수 없다. 자살한 죄인에게 저승은 열 두 대문 중 단 하나의 문조차 열어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자살한 영혼은 49일 동안 중천에 떠돌다 이후 이승으로 내려와 생전에 머물렀던 곳을 배회하면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그러다 결국 부모나 형제 혹은 친구를 찾아가 자신의 존재를 알린다. 이 방법은 이승의 사람들에게 큰 피해를 주게 된다. 마침내는 나와같은 무속인을 찾아 접신을 시도한다. 접신이 돼 죽은 자의 메시지를 듣게 되는 것이다.

3일 후 L양과 함께 북한산에 올랐다. 하늘은 맑고 구름 한 점 없었다. 하늘의 문을 열고 천신을 청했다. 자살한 죄를 빌고 저승문을 열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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