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가 되면서 프랑스는 영원히 지지 않을 것 같았던 태양왕 루이 14세의 시대가 끝나고 그의 증손 루이 15세가 즉위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변화가 있었다.

귀족들은 베르사유 궁전을 떠나 화려하게 꾸민 자신들의 대 저택에서 생활하였고 중상주의 결과 부르주아지가 지배계급으로 등장함으로써 거대한 궁정대신 귀족이나 부유한 시민의 저택이 예술의 무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변화는 로코코 미술(Rococo)을 낳게 하였다.

로코코란 용어는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데 쓰인 조약돌 혹은 조개껍데기 장식을 말하는 로카이유(Rocaille)에서 유래하였다.

앞선 세대 바로크 미술이 남성적이고, 외향적이며 엄숙한 미감을 추구했다면 로코코 미술은 사치스러운 귀족취향을 반영하듯 여성적, 관능적 특징을 지닌다.

귀족적 로코코 문화의 중심에는 루이 15세의 정부로서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렸던 퐁파두르 후작부인이 있었다.

이 시기 미술의 경향을 가장 잘 반영하는 작품은 프라고나르(Jean Honoré Fragonard, 1732~1806)의 ‘그네(1766)’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프랑스 상류사회의 향락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화면의 중앙에 호사스럽게 차려 입은 여인이 숲 속에서 그네를 타고 있다.

농기어린 표정의 여인은 자신의 애인에게 관능적 매력을 호소하는데 열중하고 있다.

여인은 조금이라도 더 자신의 속살을 보여주려 한발을 들며 신발을 허공에 날리는 교태를 부리고 있다.

남편인 듯한 어리숭한 남자가 그네를 밀고 있는 동안 그녀의 정부는 숲 속에서 애인의 치마 속을 들여다보며 즐거워한다.

작품의 분위기와는 사뭇 달리 하늘은 먹구름이 가득하지만 그네에 매달린 여인의 표정에는 쾌락만이 가득할 뿐이다.

프라고나르의 ‘그네’는 선정성 가득한 내용을 통해 당시 프랑스 사회의 도덕적 단면을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향락적 소수의 귀족문화를 대변하였던 로코코는 프랑스 혁명을 전후해 사치스럽고 한심스런 문화로 비난받음으로 그 짧은 수명을 마감하였다.

프라고나르의 '그네(1766, 월러스 콜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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