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예술이 인생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20세기 서양미술의 신화적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은 예술인이 아니면서도 평생을 예술과 함께한 인물이었다.

‘스타발굴의 원조’, ‘20세기 미술계의 전설적인 컬렉터’, ‘뉴욕 현대미술을 이끈 장본인’,   ‘모더니즘의 여왕’, ‘스캔들의 여왕’ 등의 표현에서 그의 삶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페기 구겐하임은 광산재벌 구겐하임 가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벤자민 구겐하임은 타이타닉호에 승선했다가 운명을 달리했다. 부친의 유산과 어머니의 유속을 상속함으로써 막강한 재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그녀는 가능성 있는 예술가들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친구 소개로 미술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유럽의 현대 미술가들과 친분을 맺었고 공격적으로 작품을 구입했다. 2차대전이 발발하기 일년 전인 1938년 런던에 갤러리 ‘구겐하임 젠느(Guggenheim Jeune)’를 개관하였다. 전쟁 중에도 작품을 지속적으로 구입하였는데 오히려 전쟁은 작품을 헐값에 구입할 수 있는 호재가 되기도 했다.

페기구겐하임(Peggy Guggenheim, 1898-1979)의 모습
나치 공격으로 더 이상 유럽에 머무를 수 없는 상황이 되자 페기는 소장품을 액자와 분리해 작품만 양탄자에 말아 뉴욕으로 피신하였다. 뿐만 아니라 페기는 유능한 유럽의 예술가가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 할 수 있도록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페기의 노력이야말로 뉴욕이 유럽의 현대미술의 인프라를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토대를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1942년부터 뉴욕 웨스트사이드에 금세기 미술관(Art of This Century)을 개관하며 유럽과 미국의 미술계의 교량적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미술의 중심지가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하는데 공헌을 하였다. 폴락을 비롯한 로드코, 마더월 등의 개인전을 후원함으로써 명실공히 전후 미국미술을 대표하는 추상표현주의의 산실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페기는 베니스로 건너가 정착하였다.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숙부가 세운 ‘솔로몬 구겐하임미술관’에 모든 소장품을 기증하고 81세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가 마지막 30년을 머물던 베니스 저택은 지금은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으로 꾸며져 있다. 그녀의 컬렉션이야말로 현대미술의 거장들이 거장의 위치에 오를 수 있도록 후원한 기념비적 업적을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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