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실력으로 승부한다.

그것도 최근까지 활동했던 이탈리아 밀라노 버전이다.

도전 대상은 창작오페라 ‘흥부와 놀부’. ‘흥부처’로 트리플 캐스팅된 소프라노 강호소씨(35)는 현모양처이면서도 단호한 현대판 흥부마누라를 열연하느라 연일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좀 어려워요. 일단 한국말이 다의적이라는 점에서 표현이 쉽지 않고요. 또 캐릭터가 평범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아 색깔 내기도 어렵고…. 아무튼 어렸을 때 읽었던 고전에서 벗어나 새롭게 보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그가 분석하는 ‘흥부처’는 모성애가 강한데다 하고 싶은 말을 참는 조선시대 전형의 한 많은 여인상. 사실 ‘흥부와 놀부’라는 다소 식상한 주제에 양념 치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일로, 그는 가벼움보다 묵직한 고전의 맛으로 승부수를 띄우겠다고 벼른다.

“우리 뇌 속에는 ‘거울 뉴런’이라는 특별세포가 있대요. 왜 스포츠를 보다 보면 선수들과 똑 같은 행동에 빠져드는 현상 있잖아요. 그게 바로 그런 연유랍니다.

때문에 가까운 사이일수록 감정이입도 강해진다지요. 흥부처를 연기하다 잘 안될 땐 늘 이 얘길 생각해요.” 그에게 ‘흥부와 놀부’는 한국에서의 오페라가수 데뷔무대나 한가지. 그 탓에 배역에 들이는 공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이미 밀라노 프로대열에 끼어있음에도 틈만 나면 캐릭터 연구는 물론이고 발성연습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강씨가 9년 동안이나 활동했던 밀라노에서 입국한 것은 올해 초. 잠시 다녀갈 생각이었으나 우연히 호남오페라단 오디션에 합격하면서 눌러앉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예측하지 못한 생활을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랐다.

그럼에도 고향이 주는 포근함은 이를 보상하고도 남는다고 웃는다.

전주에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성악가를 꿈꿨다.

유치원 시절부터 노래 잘한다는 소릴 들어왔고, 그 칭찬은 그를 한양대 음대에서 다시 밀라노 유학까지 이끌었다.

이런 연유였는지 밀라노 시립음악원 수석졸업은 물론 수상경력도 화려했다.

각종 국제성악 콩쿠르에서 수상했으며 급기야 2001년 ‘오델로’로 이탈리아에서 데뷔하기에 이른다.

“동양의 작은 여자가 이탈리아에서 활동하기는 쉽지 않아요. 그럼에도 열심히 하면 그들도 인정할 것이라 믿었지요. 공부할수록 끝이 보이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도전하다 보니, 이젠 같은 악보라도 볼수록 깊이가 느껴집니다.”

그의 음색은 서정적이며 곱고 아름다운 ‘리릭(lyric)형’으로 꼽힌다.

오페라가수로는 최적이라는 평가. 그가 ‘레나타 테발디’를 좋아하는 것도 비슷한 목소리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전주동부교회에 다니던 조모가 기도 중에 얻었다는 이름 ‘호소’. 그는 무대에 서면 자신도 잊을 정도로 맑고 서정적인 목소리로 노래한다.

이름 덕을 보는 것인지 흡사 세상에 대고 사랑을 호소하는 것과 결코 다르지 않다.

“우리의 진정한 본성은 재미있게 놀고 웃는 거라 합니다. 우울했다가 심심했다가 깔깔대다가 눈물 흘리다가 그렇게요. 무대가 자꾸 끌리는 건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도 적적해지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마음들을 잘 그렸기 때문일 겁니다.”

(웃음) ‘칼릴 지브란’이 그랬다. “사랑은 다만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그는 음악을 소유하려고도 소유당하려고도 않는다. 그저 음악을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강변한다.

음악에 대한 그리움이 사라졌을 때, 그는 옹색하게 살았을 그 그리움의 모서리들을 그의 품에서 떠나 보낼 생각이다.

27일 무대에 올려질 ‘흥부처’ 역시 그때까지만 또 하나의 사랑으로 품고 있는 것이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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