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수전북문협 회장
남송 시대 주자의 제자인 유자징이 편찬한 ‘소학’에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백유가 잘못한 일이 있어 그의 어머니가 매를 들어 종아리를 때리니, 백유가 흐느껴 울었다.

그의 어머니가 말하기를 “다른 날은 울지 않더니 오늘은 왜 우느냐?”백유가 말하기를 “제가 잘못하여 매를 맞으면 항상 아프더니 오늘은 어머님의 매가 저를 아프게 하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우는 것입니다.

” 법정스님의 수필 ‘마른 나뭇단처럼 가벼웠던 몸무게’에서는 이러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 해 겨울 싸락눈이 내리던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와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골목길을 빠져나오기 전에 마지막으로 뒤돌아본 집에는 어머니가 홀로 계셨다.

중이 되러 절로 간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어 시골에 있는 친구 집에 다녀온다고 했다.

” <중략>어머니가 아무 예고도 없이 내 거처로 불쑥 찾아오신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광주에서 사실 때인데 고모네 딸을 앞세우고 불일암까지 올라오신 것이다.

내 손으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점심을 차려드렸다.

혼자 사는 아들의 음식 솜씨를 대견스럽게 여기셨다.

그날로 산을 내려가셨는데, 마침 비가 내린 뒤라 개울물이 불어 노인이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위태로웠다.

나는 바짓가랑이를 걷어 올리고 어머니를 등에 업고 개울을 건넜다.

등에 업힌 어머니가 바짝 마른 솔잎단처럼 너무나 가벼워 마음이 몹시 아팠었다.

그 가벼움이 어머니의 실체를 두고두고 생각하게 했다.

나는 평생에 어머니를 두 번 업어 보았다.

한 번은 회갑 때이고 한번은 병원에서 퇴원하실 때였다.

회갑 때는 마당에 차일을 치고 동네잔치를 벌였다.

멀고 가까운 친척들과 동네사람들이 모여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내 친구들도 찾아와 축하해주었다.

친구들의 권유대로 나는 어머니를 업고 ‘어머님의 은혜’를 불렀다.

그리고 멍석을 깔아놓은 마당을 한 바퀴 돌았다.

그때 나는 어머니의 가벼운 몸무게를 실감하지 못했다.

회갑까지 건강하게 살아오신 어머니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그리고 어머니도 나를 업고 키웠으니 이 좋은 날 나도 어머니를 업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 그저 행복하고 즐거울 뿐이었다.

어머니는 여러 달 입원하셨다.

의사의 권유에 의하여 어머니를 업고 병원의 유리문을 나설 때는 봄이었다.

마음이 쓰리고 아팠다.

의사의 권유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병원 뜰의 목련이 지고 있었다.

어머니가 내년에 다시 필 목련을 보지 못하실 것도 알고 있었다.

어머니도 그걸 알았을까, 아니면 봄볕이 눈이 부시어서일까? 자식의 등에 얼굴을 부비며 묻으셨다.

나는 그때 어머니의 몸이 너무도 가볍다는 것을 느꼈다.

어머니의 피가 자식의 몸으로 스며들어서일까. 내 몸은 무겁고 어머니는 수수깡처럼 가벼웠다.

어머니라는 이름의 가벼움을 처음으로 실감한 때였다.

그때의 눈물은 지나는 바람처럼 쓸 데 없는 것이었다.

     얼마 전 고향에 볼 일이 있어 간 길에 부모님 산소에 들렀다.

추석에 아들과 조카들을 데리고 성묘를 다녀왔었지만, 그날 흐린 날씨에 빗방울이 오락가락하여 산소 주변을 잘 둘러보지 못하고, 또 어머니 무덤 곁에서 이야기도 하지 못하고 겨우 절만하고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가을볕이 투명하고 가벼웠다.

추석 즈음에 그렇게 많던 고추잠자리도 가을이 깊어서인지 보이지 않고 풀벌레소리도 잦아들었다.

산은 가을빛으로 가득하였고 산벚나무는 벌써 시나브로 잎을 내리고 있었다.

나는 절을 하고 추석 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하였다.

어머니는 이미 다 알고 계실 일들을 그래도 전해드려야 될 것 같아 마음속으로 조용조용 이야기하였다.

기억은 오래되면 낡아가지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은 세월이 가도 양각과 음각의 음영으로 깊게 파여 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것들이 멀어지지만 어머니의 목소리와 얼굴은 더욱더 어린 기억으로 살아난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나는 어머니의 매가 아프지 않아서 우는 옛사람과 솔잎단처럼 가벼운 어머니를 업고 개울을 건너는 사람을 한 폭의 그림에 담아서 가을의 창가에 걸어두고 싶다.

 <정군수 전북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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