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잇따른 초강수에도 정부가 뚜렷한 대응책을 내놓지 못한 채 '진퇴양난'에 빠졌다.

북한은 24일 개성공단 축소 및 남북경협협의사무소 폐쇄, 개성관광 중지, 문산~봉동 철도열차 운행 중단, 군사분계선(MDL)을 통한 육로 통행 제한·차단 등의 초강경 카드를 내놓았다.

앞서 북한은 지난 12일 "MDL을 통한 육로 통행을 제한·차단하는 실제적인 중대조치가 단행될 것"을 통고하며 "현 북남관계가 전면차단이라는 중대기로에 놓여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뒤이은 북한의 초강경 조치들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으며, 실제 정부는 북한이 개성공단 관리위원장과 입주기업협의회장, 법인장들을 소집 요청한 지난 21일부터 북한이 특단의 조치를 할 것이라고 사전 감지했었다.

당시 정부 내부적으로는 북한이 상징적인 인물을 추방하거나 개성공단을 출입하는 인원 및 차량을 제한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인 문무홍 관리위원장이나 준당국인 토지공사와 KT 간부가 물망에 올랐다.

반면 북측이 입주기업들의 거래선이나 주문 물량 축소 등에 우려를 표명하고 탁아소 건립 등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중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지면서 당장 개성공단 폐쇄 등의 극단적인 조치는 피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북한이 내놓은 조치는 정부가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수위의 것이었다.

특히 개성관광을 중지한 것은 예상을 빗나간 카드였다.

이 때문에 정부가 남북관계 상황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보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한 대북 전문가는 "정부의 상황 판단 능력이 일반 국민들에도 못 미치고 있다"며 "정부의 안이한 인식이 상황을 이렇게 악화시켰다"고 질타했다.

북한의 초강수가 드러난 24일 정부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정부는 사태가 발생하자 오전부터 잇따라 대책회의를 개최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당시 브리핑에서 "오전 8시30분과 9시30분 통일부 차관 주재로 회의를 개최했고, 오후 2시에도 정부 차원의 회의가 개최됐다"며 "특히 '높은 레벨'에서의 대책회의도 열렸다"고 밝혔다.

또 오후 5시30분께는 청와대와 통일부, 국정원, 국방부 등이 참여하는 유관부처 회의가 열고 '비상상황반'을 구성·운영키로 결정했다.

이어 통일부는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북한측의 행위는 남북관계를 실질적으로 후퇴시키는 매우 엄중한 사태로 (중략) 이러한 조치들을 철회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한다"며 "북측에 대해 남북대화에 나올 것을 촉구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정작 위기 상황에 대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요구대로 하자니 대북 기조를 바꿔야 하는 모양새라 이명박 정부의 지지층인 보수층에게 비난의 화살을 받을 것이 뻔하고 기존 입장을 유지하고 대응하자니 '남북관계 전면 차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이 이번 조치들을 통보하며 재차 강조한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에 대한 남측 정부의 이행 의지'와 관련, 남북 당국간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지만 정부는 우리측이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을 부정한 것이 아닌데 북한이 오해를 하고 있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정부 소식통은 "우리 정부는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6·15공동선언과 10·4선언 이행을 위해 북한에 대화를 제의해 왔고 개성공단 활성화를 방안을 내년 예산안에 반영해 놨다"며 "그런데도 북한이 우리 정부의 '진정성'을 왜곡하고 있으니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2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정부는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간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키고 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을 견지할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호전될 경우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한 조치들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의 전제 조건인 '남북 당국간 대화 재개'에 대해서는 "지속적으로 북한에 대화를 제의하고 북한에 호응할 것을 촉구하겠다"고 설명해 '메아리 없는 외침'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대해 정성장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정부가 말로만 진정성을 얘기할 뿐 장관급 총리회담 등 구체적인 대화 제의는 한 적이 없다"며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우리 정부에 진정성이 있다고 믿기는 힘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현 동국대 교수는 "정부가 추가적인 상황 악화를 막고 그 과정에서 남북간 정치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실무적인 해법보다는 특사 파견 등 최고 통치자 차원의 결단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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