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선구의 작품이 또 한 단계 진화했다.

그간의 소설이 지극히 종교적인 관점에서 써졌다면 이번 소설은 종교에 과학과 추리를 적절하게 섞어 스펙타클한 판타지물로 업그레이드 된 것이다.

2100년대판 예수 부활이래도 좋다.

2100년이라는 가상 세계가 박진감 넘치게 그려지니 미래판 예수와 열두사도 얘기래도 싫증나지 않는다.

액자소설이라는 프레임은 미로를 헤매는 기분을 들게도 한다.

거기다 글로벌시대에 걸맞는 장소며 인물들, 직업군도 미래를 훔쳐보는 재미를 십분 즐기게 해준다.

장래가 촉망되는 상하이 의대생 방준으로 하여금 장기를 털리게 하는 장치나 복제인간과 정상적인 인간을 구분하기 위해 만든 바코드, 장기이식과 복제인간들이 판치는 사회는 첨단과학과 근엄한 종교 사이를 종횡무진 넘나드는 키워드에 다름 아니다.

안과의사이자 소설가인 이선구씨(53·군산안과 원장).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그는 주로 신앙을 바탕으로 한 글쓰기를 해오고 있으며 최근에도 ‘왕롱의 잔(도서출판 계간문예刊)’을 내놓았다.

이번 작품 역시 성서가 바탕. 상상력을 한껏 발휘해 인간의 고귀한 이성을 비트는데다 복제인간을 만드는 첨단과학으로 인해 파생되는 극단적 페미니즘까지 가세해 소설은 종교를 넘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것이다.

그는 작품을 통해 환경학자들이 주장하는 환경진화론에도 부정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편 복제인간을 지향하는 과학계에 일침을 가하는데다 남성해방론도 들고 나선다.

이씨는 “미래사회는 비인간적이고 기계적인 사회로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전복시키면서 여성들의 이기성이 위험수위에 다다를 것”이라면서 “남성의 지위가 박탈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성무용론까지 주장하게 될지 모른다”고 복제인간이 몰고 올 파장을 경고하기도 한다.

이씨는 이어 “미래 문명사회는 극단적 페미니즘이 득세할 것”이라면 “사회학자들이 주장하는 모계사회 출현 이론도 불가능하다”고 일축한다.

어찌 보면 과학과 종교의 싸움으로 볼 수도 있는 작품. ‘기계화의 굴레’와 ‘창조적 생명의 윤리’를 씨실과 날실로 교차시키면서 풀어가는 이야기는 쉬우면서도 어려운, 어려우면서도 쉬운 묘한 여운을 남겨주기에 충분하다.

2100년 전 일어났던 사건을 앞으로 90년도 더 남은 2100년으로 설정한 점도 작가의 기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예수와 12제자들을 모델로 판타지와 추리 등을 버무려 장편소설로 탄생시킨 그의 상상력은 독자를 독서삼매경에 빠져들게 한다.

인간이 이기적 목적을 위해 신의 창조적 질서를 파괴하는 비극적 현실을 고발하는 한편 2100년 전 인류를 구언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예수의 메시지를 해석학적으로 탐색해 극적으로 형상화하는 기술도 탁월하다.

이 작품의 내면에서 전개되는 사건이나 광경을 비추는 카메라 역할의 신문기자 역 ‘왕롱’은 말하자면 2100년대판 가롯유다인 셈. 2100년대판 예수인 ‘죠수아’의 회개운동을 막기 위해 수사요원으로 위장 침투되면서 배반자 역할을 하게 된다.

그가 신앙에 대해 보이는 철저함은 너무 숭고해서 과학조차 용납하지 않는다.

혹여 탐욕을 위해 사용한다면 징벌받을 것이라며 날 선 경고로 맞선다.

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을 넘어서는 지경이다.

작가가 바라보는 미래는 각박한데다 암울하기 짝이 없어서 희망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다.

작품 ‘왕롱의 잔’이 자신의 이해를 위한 희화적 소설에 다름 아니라고 눙치는 작가의 ‘점잖음’이나, 온통 금기로 가득 찬 세상에 살면서 꼭 써보고 싶었던 숙원을 이제야 이룬 것 같다는 ‘시원함’으로 그나마 뿌듯함을 대신해야 할 뿐이다.

인류의 미래사회가 직면하게 될 문제점을 풍자적인 스타일로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는 작품. 누구라도 타임머신에 몸을 싣고 2100년으로 날아가 볼만하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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