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량산 능선

석축

골짜기

사람들이 산에 오르는 이유는? 대답하는 사람들 수만큼이나 많은 대답이 돌아오겠지만 아마도 정상을 밟는 것과 건강이 대부분을 차지할 것 같다.

그래도 요즘은 건강을 위해서라는 대답이 더 많아지고 있다.

정상을 올라야 한다는 스트레스 대신 힘닿는 대로 걷는 것이 자신을 위해 더 도움이 된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산행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들은 산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산행이 최고라고 한다.

생태가치와 의미를 자연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행 길에 좀 복잡한 의미는 ‘과유불급’이다.

그저 걷다가 보다가 듣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좋을 듯싶다.

여기 그저 걸으며 느끼는 산길이 있다.

<편집자 붙임>  

완주 청량산(713m)은 소위 명산은 아니다.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기암괴석이나 감탄사를 절로 나게 하는 비경도 없다.

평범하다.

화심에서 동상으로 넘어가는 밤재에서 지루한 능선을 타거나 다리목에서 송곳재까지 가파른 길을 올라서 청량산에 오른다.

이 길을 권하지 않는다.

오감을 만족시키기에는 뭔가 모자라다.

그래서 원등사 길을 택한다.

소양 예수재활원 미처 못가 오른쪽 저수지를 끼고 500여m를 가면 원등사 입구 표지석이 나온다.

여기서 원등사까지 2km. 가벼운 걸음이면 1시간 남짓, 맘이 급하면 40분이면 원등사에서 독경소리를 들을 수 있다.

원등사에 가던 날. 약한 눈발이 날린다.

그늘진 기슭엔 미처 녹지 못한 눈이 쌓여 있다.

  우리가 눈발이라면 <안도현>   우리가 눈발이라면 허공에서 쭈빗쭈빗 흩날리는 진눈깨비는 되지 말자 세상이 바람 불고 춥고 어둡다 해도 사람이 사는 마을가장 낮은 곳으로 따뜻한 함박눈이 되어 내리자 우리가 눈발이라면 잠 못 든 이의 창문가에서는 편지가 되고 그이의 깊고 붉은 상처 위에 돋는 새 살이 되자   20여분 해찰을 거듭하다보니 깨진바위폭포다.

가물어서 계곡 바위틈에서 겨우 솟아오른 가느다란 물줄기가 힘없이 폭포 아래로 떨어진다.

여름, 구슬같이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있던 때죽나무. 말라도 어미 나무를 떠나지 못한 쭈그러진 열매하나 겨울바람에 떤다.

2층집만한 바위아래 작은 쉼터는 여름을 피해 온 사람들의 흔적이 남아있다.

잎을 떠나보낸 나무들의 거죽을 보며 무성했던 여름을 회상하는 걸음이 다다른 곳은 대나무 숲. 언제 누가 살았는지 모르지만 성벽을 떠올리게 하는 석축과 방문을 열십자로 못을 박아 놓은 빈집. 쓰러지다 너무나 원통해 다시 일어선 나무가 하늘을 찌른다.

석축을 휘감은 작은 골짜기에서 눈 녹은 눈물이 맑은 소리로 떨어진다.

구절양장 휘휘 돌고 돌아 어지러움이 느껴질 때쯤이면 청량산 가는 표지기가 펄럭인다.

여기서 표지기를 따라 씩씩한 걸음으로 반시간 오르면 청량산이다.

바로 위에 있는 주차장을 지나면 가파른 길옆으로 원등사가 보인다.

원등사를 감싸 안은 능선, 능선위 나무들이 은 여인네 속눈썹처럼 가늘게 떠는 것 같다.

환영인가. 동굴법당을 지나고 명부전을 지나 작은 바위에 오르면 지나온 내 걸음이 저 아래 남아 있다.

눈을 감아 피부를 열면 땀 기운과 겨울바람이 만나 구름이 피어나고 귀를 열면 먹이를 찾는 새 소리가 귀속으로 파고들어 알을 낳는다.

봄 여름 가을, 계곡가에서 웃어주던 꽃들은 깊은 잠을 자니 조심히 천천히 걸으라던 임의 말씀이 우스개로만 들리지 않는 길. 그게 바로 청량산 가는 길이다.

▲길 안내

전주에서 소양면 소재지를 지나 전북체육고교 앞 도로를 끼고 가다보면 예수재활원 앞 10m쯤에서 우회전 작은 저수지를 지나면 원등사 표지석이 있다.

일반 차량은 여기까지만 갈 수 있다.

위쪽 주차장은 신도들을 위한 곳. /글 사진=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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