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생명의 근원인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카오스에서 스스로 생명을 얻었다.

그리고 ‘가이아’의 남편인 ‘우라노스’의 생식기가 바다에 떨어지면서 흰 거품이 솟아 나오는데 이 거품에서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탄생했다.

카오스의 혼돈 속에서 모든 것을 결합시켜 생성을 이루어 내는 힘은 에로스다.

‘아프로디테’는 신과 인간들의 사랑을 주관하며 육체의 쾌락을 긍정한다.

후대에 아프로디테의 아들로 인격을 갖는 사랑의 신 ‘에로스’, 그는 아름다우며 사람들의 마음과 몸을 무기력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힘을 가지기도 했다.

바로 황금 화살을 가졌기 때문이다.

카오스의 혼돈에서 가이아와 함께 태어난 에로스는 생식이라는 근원적 힘을 가지고 있다.

영어이름으로는 비너스라는 이름을 지진 ‘아프로디테’는 여신의 상징으로 예술가들의 우상이 되었다.

15세기 르네상스의 주자 ‘보디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9세기 고전주의 화가 ‘부르노’의 비너스의 탄생, 19세기 상징주의 화가 ‘오딜롱 르동’의 비너스까지, 그 탄생까지 아름다움으로 형상화돼 연인 중의 여인으로 거듭나는 ‘아프로디테’, 그녀는 관능미를 가진 여인의 육체로, 영적 아름다움을 가진 여인으로, 세속적인 사랑뿐 아니라 신성한 사랑의 여신으로 태어난다.

사랑과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에로스’는 사랑과 생성의 상징성을 함축한다.

  그들의 중첩적인 직관에서 나는 ‘에곤쉴레’의 그림을 읽는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에곤쉴레’는 외설적인 그림을 그렸다는 이유로 24일간 감옥생활까지 했을 만큼 그의 그림은 어느 측면에서 외설적이고 성애적으로도 강렬하다.

그래서 처음 ‘에곤쉴레’의 그림을 접했을 때 약간 휘청거렸고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장식적인 요소와 배경들을 생략한 채 근원적인 인간의 욕구에 다가서서 느끼고 있다는 느낌은 오히려 그림을 볼수록 신비로움을 자아냈다.

 요는 그의 그림에서 나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꿈틀거리는 몸의 색채와 근원의 카오스를 읽는다는 것이다.

잉태하는 아프로디테와 생성의 여신이 되어 수많은 사랑의 희열과 고뇌, 풍요를 낳는 에로스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이다.

꿈틀거리는 카오스의 세계, ‘에곤쉴레’의 그림은 근원이라는 생명의 향내를 풍기며 홀로 화려하다.

화가로서는 10년에 불과하다는 그의 업적은 믿어 지지 않을 만큼 역동적이고 풍요롭게 근원의 호흡을 표현하며 대지의, 생명의, 작은 부분까지도 향내 나게 호흡하기에 그의 그림은 혼돈의 카오스며 생명의 근원인 가이아다.

벌거벗은 자화상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은 인격의 ‘비너스’, 간결하고 선명하며 오랜 정적의 성애를 헤게모니처럼 물고 있어 나는 모르면서도 알고 있다고 하고 알고 있으면서 모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미묘한 감정에 젖는다.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