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축도 전경

 ‘섬’에선 고즈넉이 한 곳을 바라보고만 있어도 들끓던 욕망이 이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 공(空)의 자리에 들어앉는 것은 ‘충만’이다.

그제서야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다만 절묘한 순간에 이르기 위한 노력이었을 뿐이다.

아, 장 그르니에(Jean Grenier 1898~1971)였다.

박등우씨 부부
‘카뮈’에게 찬란한 지중해가 주는 참다운 교훈을 심어주었고, 빛과 육체의 찬란함을 사랑했던 한 인간…. 한동안 잊고 지냈던 그르니에를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방축도’에서의 박등우씨 부부 때문이었다.

몇 년 전 폐부전증이라는 사형선고를 받고 산소호흡기만 의지하던 아내 강명희씨(57). 숨 쉴 수 있는 곳을 찾아 방황하던 끝에 만난 곳이 바로 ‘방축도’였다.

박씨가 마포고 사서교사를 하던 중에도 주말부부를 자처하면서까지 방축도행을 서슴지 않았다.

낯 설은 타향이지만 물과 공기가 좋아 무릉도원이 따로 없다는 이들에게 어쩌면 이곳은 ‘삶의 마지막 여행지’인지도 모른다.

  #‘삶의 마지막 여행지’가 키워드 그럴 법도 한 것이 ‘방축도’에는 현재 고름장터 50여기가 남아있다.

선유도는 5기 정도 밖에 발견되지 않은 고름장이 왜 이곳에만 그리 많은 것일까. 이윤선 교수(목포대)의 ‘북망산천’이라는 풍수적 해석이 이를 반증한다.

이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이들 ‘고름장’은 청동기 이전 고인돌터로 연결된다.

‘선유지중해’를 한 공간으로 설정했던 사람들은 북방의 의미로 ‘방축도’를 설정했을 것이고, 그곳에 자신들의 횡혈식 무덤을 만들었을 것이라는 것. 삶의 마지막 여행지로 방축도를 선택했다는 추론이다.

장병권 교수(군산대)는 한 차원 더 나아가 이곳에 ‘해양건강종합센터’를 유치하자고 주창한다.

즉 치료의 공간으로 확산하자는 얘기다.

이에 대해 이 교수도 동조한다.

이 교수는 “방축도의 장점은 즐비한 소나무로 인해 산소가 많은 점”이라며 “이를 이 지역에 떠돌고 있는 설화를 바탕으로 한 선도(仙道)와 연결시키면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고군산에 ‘고래’가 산다고(?) ‘방축도’가 고군산에서 갖는 또 하나 의미는 ‘고래’로 압축된다.

이 교수는 김영래씨(좌계학당 교수)의 주장을 빌어 고래사육 요지였을 가능성이 크다고 소개한다.

이의 배경으로 ‘고슴도치섬’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위도를 꼽는 것. 말하자면 김씨가 고래사육설을 주장한 ‘고슴도치고래’와 ‘돼지고래’, ‘고래’중 이 명칭을 빌어 ‘고슴도치고래’와 유관했을 것이라는 논리다.

이에 대해 지역향토계도 다분히 긍정적인 견해를 편다.

현재도 고군산에 고래가 출몰하곤 한다면서 터무니없는 얘기만은 아닐 것이라고 자못 신중함을 보인다.

이 교수의 주문은 고래를 넘어 이곳을 아예 ‘선유지중해’로 명명하자는 데까지 이른다.

횡간도~선유도~장자도~관리도~방축도를 연결하는 공간을 호수로 전제하면 가능하다는 주장. 여기에 고래까지 연결시키면 훌륭한 스토리가 된다면서 이를 십분 활용해 ‘고군산 명품만들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부실공사로 중단된 ‘방파제’가 옥의 티 ‘고군산의 방파제’라는 의미로 이름 지어진 ‘방축도’는 아이러니하게도 선창가의 붕괴가 진행중이다.

새만금으로 물길이 바뀌면서 일어난 현상인데다, 모 교수 특허로 추진됐던 방파제도 원인에 다름 아니다.

특히 현재 부실공사로 중단된 방파제는 들지도 놓지도 못하는 상황. 주민 의견을 무시하고 선착장과 연결시키면서 초래된 현상이다.

윤시철 이장(34)은 “애당초 모 교수 특허 작품을 시범적으로 진행한다는데 불합리한 점이 많았다”면서 “이에 바다 사정을 잘 아는 주민들이 의견을 제시했음에도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결국 물길 사정을 알지 못하는 교수로 인해 ‘방축도 방파제’는 흉물로 자리한 채 헐어낼 수도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방축도’는 고군산의 꽃으로 부르기에 부족하지 않다.

이는 모두 마을 청년들 노력으로 이뤄진 성과. 콘크리트를 전혀 쓰지 않은 자연친화적인 산책로를 냈고, 마을 곳곳엔 동백을 심어 ‘동백섬’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음은 물론이다.

게다가 간간이 볼 수 있는 철새 보호에도 만전을 기한다.

‘방축도’가 머잖아 새들이 깃들고 천혜자연의 요새가 되리라는 기대는 결코 장밋빛 환상만은 아닐 것이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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