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잘 나고 싶다.

잘 생기고, 잘 벌고, 잘 입고…. 그것이 온전한 행복의 척도는 아니겠지만 잘 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열사람 중에서 아홉 사람이/ 내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해/ 그 놈의 손가락질 받기 싫지만/ 위선은 싫다 거짓은 싫어/ 못생긴 내 얼굴 맨 처음부터/ 못 생긴걸 어떻게.”“모처럼에 동창회서 여잘 만났네/ 말 한번 잘못했다 뺨을 맞았네/ 뺨 맞은 건 괜찮지만 기분 나쁘다/ 말 안 하면 그만이지 왜 때려/ 예쁜 눈 예쁜 코 아름다운 입/ 귀부인이 되었구나.”하지만 모두 그렇게 살지는 않는다.

이 노래가 만들어진 1980년대 우리나라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억압된 시대였다.

신형원의 ‘터’와 ‘홀로아리랑’으로 더 잘 알려진 한 돌은 이 노래를 만들고 앨범에 넣기까지 가사를 계속 고쳐야 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대로 쓰지 못했다.

그래서 앨범 수록곡은 맥이 없다.

현장에서 듣는 진짜 못생긴 얼굴이 사람들에게 크게 호응을 얻었다.

“너네는 큰집에서 네 명이 살지/ 우리는 작은집에 일곱이 산다/ 그것도 모자라서 집을 또 사니/ 너네는 집 많아서 좋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이 오면/ 우리 집도 하얗지.”“며칠이면 우리 집이 헐리워진다/ 쌓아놓은 행복들도 무너지겠지/ 오늘도 그 사람이 겁주고 갔다/ 가엾은 우리엄마 한숨만 쉬네/ 개×× 개×× 나쁜 사람들/ 엄마 울지 마세요.”심플한 코드와 멜로디로 일반 서민들의 현실을 꾸밈없이 표현한 가사로 그 후에는 황신혜 밴드가 리메이크하기도 했다.

물론 표현하기 어려운 가사는 허밍으로 처리했다 노래는 시대를 담는다.

못생긴 얼굴들이 비난 받고 못사는 사람들이 천대받는 세상을 노래하는 노래가 진정으로 안 불려지는 세상이 오길 바라지만 결코 쉽지는 않아 보인다.

2009년 1월 우리는 먹고 살 터전을 잃어버릴 위기의 사람들의 절규를 죽음으로 맞이해야 했다.

철거민들과 진압경찰의 죽음,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한 돌의 ‘못생긴 얼굴’들은 차가운 시멘트바닥에서, 뜨거운 화염 속에서 다치고 죽어간다.

개발독재의 1970년, 군부독재의 1980년이 아니라 2009년을 사는 현재 우리나라의 안타까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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