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주화산(565m)은 삼거리다.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달려온 금남호남정맥이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김정길 지음)에는 “주화산은 동남쪽에 섬진강, 동북쪽으로 금강, 서쪽으로 만경강의 분수령이 된다.”고 적혀있다. 동쪽에서 이어진 금남호남정맥이 주화산에서 남(호남정맥)과 북(금남정맥)으로 갈라진다는 의미로 빗물도 정맥 산줄기에 따라 금강, 섬진강, 만경강으로 나뉘다 바다에서 다시 만난다는 얘기다. 특히 보룡고개를 넘어 금남정맥 왼쪽으로 동상면에 만경강 발원지인 밤샘이 있기도 하다.

 내 발아래 떨어진 물이 왼쪽, 오른쪽 방향 따라 각자 다른 강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성장 동화처럼 엮어보면 어떨까.  “구름나라 친구였던 우리들, 같은 등산화에 착륙했건만 서로 반대편으로 미끌어 지면서 섬진강으로, 만경강으로 각자 갈라진 우리…”

 주화산은 이렇듯 우리나라 산줄기, 강줄기를 공부하는 재미도 쏠쏠한 산이다.

  #모래재로 오라

진안을 진안사람들은 ‘진안고원’ 이라고 한다. 지역 문화인 가운데 이현배(손내옹기장) 씨는 외지 손님이 진안 가는 길을 물으면 운전하기 좋게 뻥 뚫린 보룡고개 4차선이 아닌 꼬불꼬불 모래재 길을 알려 준다고 한다. 자동차를 타고 한참을 숨차고 어지럽게 올라 모래재에 도착하면 진안이 왜 고원인지 알 수 있다고. 그러면 진안을 이해하기가 쉽고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모래재는 진안 고원문화를 이해하는 첫 열쇠인 셈이다.

 더불어 계절에 따라 변하는 모래재의 풍광은 전주 근교의 몇 손가락 안에 드는 드라이브 코스로 잘 알려져 있고 터널을 지나 진안 방향 메타세콰이어 길은 사진작가들의 단골 촬영지이기도 하다.

 하지만 모래재에도 상처는 있다. 2004년 시작된 공원묘지 조성 공사로 금남호남정맥 옆구리가 다 파헤쳐져 버린 것이다. 꼭 이런 정맥 줄기에 공원묘지를 조성해야만 했는지 또 꼭 허가를 내주어야 했는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뭇잎 미끄럼틀

 영화 ‘화려한 휴가’를 촬영했던 모래재 터널을 지나면 바로 모래재 휴게소다. 휴게소 건물 옆으로 보면 임도가 보인다. 표지기도 바람에 날린다. 능선까지 오르는 길은 찾기 쉽다. 능선에 오르면 왼쪽이 호남정맥 곰치재로 가는 길이다. 정맥꾼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오른쪽 길을 따라 간다.

 군부대 교통호가 즐비 하다. 군데군데 무너진 진지 안에 나무도 자라고 나뭇잎도 가득 하고 자칫 교통호 안으로 발을 들여 놓았다간 깊이를 모를 나뭇잎 함정에 발목 삐기가 십상이다. 교통호 안엔 새만금 공사로 이제는 육지가 된 내초도의 버려진 해안 초소에서 본 그림과 같은 상황도가 그려져 있다.

 주화산으로 향하는 능선 길에는 나뭇잎이 수북하다. 사람들 발길이 뜸했다는 얘기다. 나뭇잎 융단을 걷는 편안함이 있다. 내리막길엔 나뭇잎 미끄럼을 타는 재미도 있다. 
 

#주화산? 조약봉?

 헬기장을 막 지나니 주화산 정상. 정상이라는 말이 조금은 어색한 풍경이다. 당산제를 치른 듯 세 갈래 정맥을 가리키는 표지가 장관이다. 전주는 물론 전국 산악회와 산꾼들이 저마다 표지기를 달아 놨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표지기가 나뭇잎처럼 서로 비벼 댄다.

 주화산, 주줄산, 조약봉. 산 이름을 놓고 양보 없는 다툼이 벌어지고 있다. 주줄산은 운장산이고 구슬 주(珠) 빛날 화(華) 주화산이 맞는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약(鳥躍)봉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쇄물까지 코팅해 주화산 정상에 남겨 놨다.

 그런데 압권은 따로 있다. 바로 정상 푯말이다. 산 이름을 적어 놓은 곳이 얼마나 벗기고 다시 쓰고 또 벗겼는지 만신창이가 됐다. 자기가 주장한 산 이름이 맞다고 그전에 쓰인  이름을 지워서 일 것이다. 내가 갔을 땐 ‘주줄산’ 이였는데 지금은 어느 산 이름으로 바뀌었을까 궁금하다.
 
모래재 휴게소를 출발해서 주화산을 거쳐 다시 휴게소로 돌아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남짓. 정상에서 온 길로 돌아오지 않고 금남호남정맥을 타다 조약치에서 공원묘지 방향으로 내려와도 된다. 전주를 기준으로 드라이브와 산행을 합치면 두 시간이면 족하다. 정맥길 3곳을 한꺼번에 맛보는 산행으론 이만한 곳이 없다.
 
#가는 길

전주에서 화심을 지나 4차선 도로 옆 옛길로 가면 된다. 모래재 터널(영화 ‘화려한 휴가’ 촬영지)을 지나면 바로 휴게소와 공원묘지가 있다. /글 사진=이병재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