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은 참으로 설레는 달이다.

경이로운 눈으로 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다가서면 설레지 않은 날이 있을까마는 삼월의 설렘은 살아 있음의 본능과 같은 설렘이다.

겨우내 움츠렸던 심신의 활기야말로 설렘의 시작이다.

계절의 유혹을 무엇으로 달랠 수 있으랴! 가만히 있어도 온몸으로 전해오는 생명의 약동감은 바람결로 온다.

그래서 봄바람은 죄가 없으며, 봄에 사랑바람이 든 여심 또한 유죄가 아니다.

사랑으로 끌리는 마음걸음을 무엇으로 거둘 수 있으랴! 삼월이 지나면, 춘심을 거두고 보면, 제 자리로 돌아간 인생과 만나겠지만 설렘마저 식어버린 갈·겨울바람을 무슨 시심으로 달랠 수 있으랴! 새 교과서를 어루만지며 만끽했던 설렘은 풋풋한 향기로움이었다.

종이냄새였던가, 아직 마르지 않은 잉크냄새였던가? 아니면 교과서가 담고 있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었던가? 아마 이 풋풋한 향기의 정체는 그런 설렘이 한데 어우러져 만든 동심이었을 것이다.

속표지에 내 이름 석 자를 쓰고, 이름과 함께 꿈도 담아 좌우명을 썼다.

새 교과서를 타고 날았던 설렘마저 거둔다면, 우리가 정녕 가보고 싶은 미지의 세계는 어디일 것인가! 따스한 양지를 찾아 동무들과 나눴던 이야기 또한 언제나 미래를 향했던 설렘이었다.

어른들로부터 어깨 너머로 주워들은 도시의 이야기, 어쩌다 손에 넣어 책표지가 닳아빠진 만화의 줄거리, 어머니 할머니 무릎교실에서 배웠던 옛날이야기들. 이런 이야기들은 확대되거나 축소되고, 변이되고 변형되어 그 담화의 본래 모습마저 찾을 수 없었지만 어린 삶을 지탱하게 했던, 그래서 미래를 꿈꾸게 했던 설렘의 정체가 아니었던가! “앞에 가는 여자 나의 골똘함에/ 그냥 쭈-욱 끌려온다/ 그녀가 아닌 다른 것이/ 끌어당기지 않은 다른 것이/ 살갑지 않은 껍질 같은 것이/ 그 옆 함께가 아닌 것이/ 끌려온 것 사이에 남겨진/ 미련 아닌 것이// 잡아당기던 힘을 빼면/ 제 자리로 돌아갈 것이(임경신 ‘당기다’ 전문).” 삶의 본질이 아닌 것이 눈길을 준들 그것이 얼마나 갈 수 있으랴. 한때의 계절풍 같은 위력도 정녕 나를 송두리째 앗아갈 수는 없는 것. 잠시 머무는 길손 인생에 정녕 나를 설레게 하는 매력 포인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살갑지 않은 껍질 같은 것’이 끌어당긴들 나그네 인생이 황혼까지 동행할 수는 없는 것! 미련으로 남겨 두어도 결코 섭섭하지 않은 것, 이루어지지 않아도, 잃어버려도 단연코 아쉽지 않은 것들은 진정 나를 설레게 하지 못한다.

함께 할 수 있는 것, 영원이라는 가상의 간이역 혹은 종착역을 향하는 것, 동행자의 손을 잡고 영혼의 악기를 울려주는 것, 그런 설렘이 있다면, 그런 끌어당김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코 삶의 본질과 통하는 어떤 것이어야 한다.

마음을 사로잡는 것, 정신을 차압하는 것, 영혼을 저당할 만한 것이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면 그것은 살아 있음의 본능과 통하는 설렘이어야 한다.

영혼의 키를 부쩍 자라게 하는 어떤 전율 같은 끌림, 마음의 풍선을 한껏 부풀게 하는 어떤 동심 같은 당김, 정신의 텃밭을 기름지게 하는 어떤 잠언 같은 유혹, 나를 통째 주어도 아깝지 않은 어떤 슬기로운 매력은 정녕 삶의 본질로부터 오는 원초적 향수다.

삼월은 그런 설렘으로 인생계절을 살아 있게 하는 살뜰한 향수다.

<전북문협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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