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댁식구들은 “아멘” 을 할 줄 몰라 “예”로 약속해 보인다. 방안은 계속 소리가 없다. 새댁은 줄곧 문 곁에 딱 들어붙어 장승처럼 우뚝 서 있을 뿐이다. 정말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그게 도리어 잘못된 게 아닌가 내심 걱정이 되는 부분이다. 눈치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예 목사만은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씀만 증거한다.

“그뿐 아닙니다. 마귀는 하나님께 경배를 못하게 함은 물론이요, 아예 예수 믿는 믿음에서 떠나, 귀신의 가르침을 쫓도록 하면서, 시종일관 귀신의 바라는 바 그 목적대로 죽어도 교회를 못 다니게 합니다. 그러면서 우상에게 절하게 만든다고 디모데전서 4장 1절을 들어서 밝혀주셨습니다. 그런즉 마귀의 가르침을 쫓아 다시는 예수님의 교회를 등지거나 배반하거나 떠나는 일이 없어야만 되겠습니다. 물론 그렇게들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이번에도 새댁식구들이 몹시 긴장하는 가운데 “예”로 굳게 서약한다. 그러나 방안은 연해 미동도 하지 않는다. 정말 이상할 노릇이었다. 마치 문 옆에 다른 인형을 대신 세워놓은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 거칠기만 했던 숨소리도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가면 어찌 될까요? 사무엘상16장과 18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처럼 자기를 고쳐주려고 들어선 다윗에게 단창을 휙휙 던지듯 바로 그러한 짓을 하게 됩니다. 한 결 같이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말입니다.”

이 말에 새댁식구들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예 목사의 말씀은 계속된다.

“어디 그뿐입니까? 사람에게 마귀가 들어가면, 흉악해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를 두고 마태복음 15장 22절을 들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라는 말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귀신이 사람 몸 속으로 들어가면, 어디서든지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경련을 일으키며, 그리고 파리하여 가는지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놀라 큰 소리만 치게 할 뿐 어떻게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빠지게 한다고 마가복음 9장을 들어 밝혀주기도 했습니다. 특히 문제 중의 문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다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다시 돌아 가리라 하고 와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 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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