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지난 2일 쟁점법안 처리 방안에 대해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각 당 내부는 후유증으로 진통을 겪고 있다.

한나라당은 금산분리 완화 법안(은행법 개정안)을 비롯한 일부 쟁점법안의 3일 본회의 처리가 무산되자 자성론까지 대두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일단 표면적으로는 법안 처리 무산의 원인을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탓으로 돌리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4일 최고 중진·연석회의에서 "야당이 합의문의 잉크도 채 마르기 전에 일부를 위약함으로써 마지막 오점을 남겼다"며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민주당을 비판했다.

필리버스터가 처리 무산의 주 원인이기는 하지만, 민주당의 지연 작전에 휘말린 것 자체가 한나라당의 전략 부재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한켠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원내대표단이 조속한 법안 처리를 위해 소속 의원들에게 참석을 독려했지만 오후 8시가 넘도록 의사 정족수도 채우지 못한 것은 당 내부의 기강 해이를 보여준 사례라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은 협상 타결 당시 쟁점법안의 처리 시기와 방식을 약속받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하는 분위기였지만, 금산분리 완화 법안의 처리 무산으로 자화자찬식의 평가가 무색해져 버렸다.

송광호 최고위원은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야당에서 역속을 지키지 않고 의도적으로 의사진행을 방해하는 문제도 있지만, 통과되지 않은 법을 보면 거대 여당이 자성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쓴 소리를 했다.

한나라당은 협상 과정에서 최대 쟁점이었던 방송법과 신문법, 인터넷멀티미디어통신법(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 4개 법안의 처리시기를 못 박고 표결처리까지 보장받는 개가를 올렸다고 자평했지만, 사회적 합의 기구 구성 방식과 성격을 놓고 여야간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금산분리 완화 법안은 상임위에서 통과된 만큼 '대세'에 큰 지장이 없고, 사회적 합의기구도 여야가 일단 큰 틀에서 합의를 한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와 관련해 홍준표 원내대표는 "본회의에 남아있는 법안은 처리 시한만 조금 연장될 뿐이지 처리에는 어려움이 없다"며 "금산분리 완화법과 국민 연금법 등 2~3개가 법제사법위에 계류 중이지만 그것도 4월 국회 이전이라든지 또는 4월 국회에서 조속히 처리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여야 합의가 박근혜 전 대표의 '중재안'을 수용하는 모양새가 됨으로써 친이계나 당 지도부로서는 향후 국정 운영에 상당 부분 제약을 받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협상 과정과 타결 직후 일부 비주류 강경파를 중심으로 원내대표 책임론이 제기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었다.

이번 2차 입법전쟁 과정에서 언론관계법의 상임위 기습 상정과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의 발언, 김형오 국회의장의 중재안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갔다는 비판론이었다.

하지만 전날 금산분리 완화법안의 처리를 무산시키면서 야당다운 모습을 어느 정도 보였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민주당 내부는 일단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양상이다.

정세균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에서 "합의 내용에 대해서 불만과 비판이 있지만, 현재의 지도부가 그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에는 특별한 이의가 없었다"며 "지도부가 책임 있게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김유정 대변인도 최고위원회의 직후 브리핑을 통해 "최고위원들은 원내 지도부에게 '지금은 대여투쟁의 고삐를 더욱 움켜쥐고 단결할 때다.

언론악법 저지를 위한 대여투쟁 방안을 철저히 강구하라'고 만장일치로 주문했다"고 말해 사실상 원내 지도부의 유임을 시사했다.

이번 입법전쟁에서 거둔 성과가 없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언론 관계법 처리를 위한 '사회적 논의기구'를 구성키로 함으로서 향후 100일간 '여론전쟁'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었다는 데 민주당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여기에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지분을 사실상 불허한다는 입장을 얻어낸 것도 성과라면 성과라는 게 당 지도부의 입장이다.

하지만 정국 향방에 따라 언제든지 얘기치 못한 돌발 변수가 닥칠 수 있는데다 이번 합의안은 미완의 합의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내부 갈등의 불씨가 예상보다 빨리 되살아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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