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치유 길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427.6m). 하지만 불명산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많다.

불명산은 화암사를 품고 있는 산이다.

시내에는 벚꽃이 펑펑 터지면서 이미 봄이 안마당까지 들어 왔지만 화엄사로 통하는 이 계곡에는 아직 봄이 언저리에서 머뭇거리고 있다.

하지만 조금만 귀 기울여 보면 여기 저기 봄 기지개를 켜는 나무들의 재잘거림으로 숲 속이 소란스럽다.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떠 보면 뽐내는 현호색, 산자고, 생강나무 꽃과 갓난아이 피부보다 더 부드러운 초록빛깔 새 잎이 겨우내 칙칙했던 숲 색깔을 바꾸어 놓고 있다.

화암사 가는 길은 지난해 완주군이 ‘완주 문화유산 리얼생생토크’ 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청 ‘지자체 문화재 활용 우수사업’에 응모해 선정됐던 길이다.

문화재청으로부터 우수사례로 선정된 길, 역시 여느 숲속 길과 분위기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편백나무와 이름표

주차장에 도착하면 예쁜 그림 안내판이 맞는다. 이 안내판에 적힌 연화공주를 둘러싼 설화를 꼭 기억해야 한다. 나중을 위해서. 조금 걷다보면 계곡가에 있는 현호색 군락이 보인다.

얼레지(앞쪽)와 현호색

싱싱한 보랏빛을 머금은 현호색은 시들어 가는 얼레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현호색을 맘껏 구경하고 다시 길 위로 나오면 나무 이름표가 눈에 띈다. 고로쇠나무, 갈참나무, 느티나무, 떡갈나무 등등 나무보다 멋진 이름표가 철사가 아닌 스프링에 묶여 있다. 나무 몸집이 커지면 같이 늘어나는 스프링.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지 않기 위한 배려다.

산자고 꽃

발지압 다리

전봇대 기둥이 놓여있던 작은 다리는 ‘건강을 위한 발지압 다리’로 변신했다.

시멘트 기둥 위에 둥근 나무를 길게 절반으로 잘라 얹었다.

지압을 위해 신발을 벗기는 아직 차다.

다리를 건너면 정말 손바닥만큼이나 좁은 편백나무 숲에 도착한다.

언제나 클까? 걱정을 하며 걷다보니 마음을 치유하는 길에 도착한다.

산길에 놓인 둥근 나무를 징검다리처럼 느리게 밟으며 걸어 본다. 왔다 갔다.

때론 일부러 낙엽에 빠지면서. 이제 산 길 걷기가 끝났다.

절벽에서 바라본 생강나무꽃과 길

남은 길은 계곡 길이다. 연화공주를 살려냈다는 복수초를 설명하는 나무 이름표는 있으나 복수초 꽃은 지고 없다.

하지만 서운해 하지 마라. 산길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송전탑 받침이 복수초로 변신했다 일명 ‘타일로 꾸민 복수초’다. 조잡하다는 느낌이지만 그 아이디어가 기특하다.

‘주민과 함께 만든 안심다리’를 건너면 바로 계곡이다. 갈수기라서 물이 아주 조금이다.

바위 위로 흐르는 물소리를 들을 수 없어 아쉽다. 예쁜 분홍 진달래라도 지천으로 피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쉽다.

147계단

움트는 새 나뭇잎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하는 것이 서운타.계곡길 오르기 10여분. 화암사에 오르는 마지막 여정 ‘시와 그림, 이야기가 있는 ‘147계단’이 앞을 막는다.

안도현 시인의 시구가 액자에 담겨 걸려있고 이 길을 다녀간 사람들의 느낌과 추억이 작품으로 걸려 있는 곳. 칙칙했던 147계단이 갤러리로 대 변신했다.

산길에서 만나는 주민 갤러리. 그곳이 계곡 길의 끝이다.

화암사를 앞에 두고 여기서 오른쪽 표지기를 따라가면 불명산이다.

화암사 가는 길이 달라졌다. 완주군의 ‘완주 문화유산 리얼생생토크’는 화암사 가는 길을 예술, 생태, 교육이 어우러진 문화공간으로 조성하려고 했다.

스토리텔링을 접목한 이번 변신은 무죄일까? 혹시 공공미술을 통한 ‘문화재 활용’ ‘관광자원화’에 대한 지나친 욕심이 자연을 멍들게 하지는 않았을까. 화암사 가는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평가는 사람 수 만큼이나 제각각이다.

147계단 옆 옛길, 절벽에 생강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샛노란 꽃봉오리 사이사이 지나온 계곡 길이 길게 이어진다.

/글 사진=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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