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여산에서 바라보는 섬진강과 평야.

하늘을 향해 삐죽 튀어나와 길게 이어진 아슬아슬한 바위를 걸어보고 서양 장기판같이 생긴 청보리 밭을 느릿느릿 휘돌아 감도는 파란 섬진강을 바라본다.

이달엔 순창 책여산(冊如山․341m)을 가보자.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책여산은 이름이 여러 개다.

순창군 적성면에 있는 해발 341m의 책여산.
먼저 책여산 앞에 순창이라는 지명을 붙는 까닭은 고개를 사이에 두고 남원 책여산이 있기 때문이다.

순창 책여산은 화산(華山․花山)이나 채계산(釵笄山), 또는 송대봉(松薹峯)이라고도 하며 특히 깎아지른 봉우리는 새들조차 위태로워 앉기를 꺼려했다고 한다.

책여산은 이름도 여럿이지만 전해오는 재미있는 얘기도 많다.

최영 장군이 장수군 산서면 치마대에서 화살을 날린 후 말을 달려 송대봉에 도착했는데 화살이 날아오지 않아 화살보다 늦게 도착했다며 자신이 타던 말의 목을 베었다는 얘기. 그런데 말의 목을 벤 후에 화살이 날아와 자신의 경솔함을 후회했다는 것이다.

책여산 산행은 무량사에서 시작한다.

무량사 앞마당에 스님 허락을 받고 차를 주차시키고 대웅전 앞을 지나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섬진강가에 솟은 용골산이 그러하듯 초입부터 경사가 상당하다.

금돼지굴
15분 정도 오르면 금돼지 굴이다.

왜 금돼지 굴일까? 원님 부인 실종사고로 유명한 적성에 새 원님이 왔다.

자기 부인 치마허리에 명주실을 달아 놓고 사라지길 기다린다.

간밤에 부인이 실종됐다.

명주실을 따라 수색대와 함께 굴에 도착한 원님, 굴 안에는 금돼지가 부인을 잡아 놓고 있었다.

이에 원님이 금돼지를 죽이고 부인을 구한 굴이란다.

하지만 굴이 깊지도 않고 넓지도 않아 큰 기대는 금물. 여기서 10여분 더 오르면 ‘하양 허씨‘ 묘가 있는 금돼지굴봉이다.

불끈 솟아있는 송대봉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서부터는 계단이다.

싸리나무꽃
세워보니 모두 71개. 계단을 내려와 연녹의 여린 나뭇잎 사이로 피어있는 분홍 싸리나무 꽃을 따라가면 당재에 도착한다.

무량사 입구에서 화산옹 바위를 거쳐 오르면 이 고개를 만난다.

운동시설과 벤치가 있고 어른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안내판이 기억에 남는다.

여기서 천천히 오르막 길, 계단 68개를 포함 10분 정도 걸으면 송대봉이다.

정상 목재데크에 서면 푸근한 섬진강(여기 사람들은 적성강이라고 부른다)이 발아래 흐른다.

평야 한 복판에 있는 마을, 그 옆의 청보리 밭. 평화롭다 못해 게을러 보이는 섬진강이다.

하지만 이 섬진강의 평화와 생태계가 한때 큰 위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송대봉에서 바라보면 동계면 방향의 오수천이 섬진강에 안기던 그곳에 하마터면 ‘적성댐’이 들어설 뻔했다.

주민들과 환경단체의 반대로 댐 건설을 막았지만 개발과 개발에 따른 이익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적성댐 건설이 언제 또 다시 추진론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섬진강에 대한 상념이 깊어갈 때 쯤 길을 떠나야 한다.

이제부터는 손에 땀을 쥐는 바위 길을 로프에 의지해 걸어야 한다.

산 능선을 찢고 하늘로 튀어 나온듯한 바위 위를 걷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섬진강 쪽을 바라보면 천 길 낭떠러지가 입을 벌리고 있고 오른쪽은 자칫 미끄러지면 어디까지 굴러갈지 모르는 급경사. 그저 발아래 신중히 바라보면 한걸음씩 나갈 뿐이다.

그렇지만 섬진강과 능선 절벽이 조화를 이룬 전망 좋은 바위에서는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온다.

5월의 강바람도 기가 막히게 시원하다.

30여분 걸으면 바위 길이 끝난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적당한 스릴과 멋진 풍경은 도내에서 둘째가라하면 서운할 판이다.

오동나무꽃
길이 급경사 내리막이다.

산 절반이 뚝 잘렸다.

채석장의 흔적이 아프게 남아 있다.

더 내려가니 남원․함양을 향하는 국도를 만난다.

이 길을 넘어 남원 책여산에 오르기도 한다.

여기서 순창읍 방향으로 24번 국도를 따라 20여분 걸어가면 무량사 입구다.

무량사 조금 못미처 당재로 향하는 길에 귀한 구경거리가 있다.

화산옹 바위다.

활짝 핀 철쭉 꽃밭 한복판에 서 있는 오른쪽 어깨가 잘려나간 백발노인. 화산옹 바위는 모양도 모양이지만 전해오는 얘기가 압권이다.

그럴듯한 얘기에서 믿거나 말거나 수준의 재미있는 얘기가 안내판에 소개돼 있다.

산행시간은 대략 2시간이나 2시간 30분이면 충분하다.

  ▲신비한 화산옹바위 전설 화산옹 바위의 신비로움은 먼저 바위 색깔의 변화다.

화산옹바위
적성현에 큰 불이 난다거나 유행병이 퍼져 사람이 많이 희생당한 해는 파란색을 띠고 전쟁이 일어나거나 천재지변이 닥쳐오면 붉은색을 띤다고 한다.

또 풍년이 들면 아름다운 하얀색, 흉년이면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얘기가 전해 온다.

이런 화산옹 바위의 신비로움은 가뭄이 들면 관청에서 기우제를 지내고 아기를 못낳는 부인은 백일기도를 지내는 대상이 되기도 했다.

여기에 화산옹바위 오른쪽 어깨가 잘려난간 사연도 재미있다.

전라병사 김삼용이 이곳을 지나려 하는데 아장이 다가와 “화산옹에 경의를 표하지 않으면 변을 당한다” 며 말에서 내려 지나 갈것을 권유하지만 김삼용은 그 말을 듣지 않는다.

결국 화산옹바위 앞을 말을 타고 지나가자마자 말이 피를 토하고 죽는다.

화가 난 김삼용이 화산옹바위를 칼로 내려쳐 오른쪽어깨를 부셨다는 것이다.

이후 바위의 영험함이 사라진 것은 물론이고 적성현도 잇달은 괴변으로 말미암아 결국 폐현되고 말았다고 한다.

/글 사진=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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