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말하는 세 가지 즐거움 중에는 *맹자의 “군자가 가져야할 세 가지 즐거움”(君子有三樂-군자유삼락)을 들고 있지만 지금은 시대의 변천과 생활환경 그리고 각자의 개성에 따라서 다양한 유형의 즐거움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독거노인과 노숙자들에게 6년째 무료점심을 제공하고 있는 어느 국수집 주인은 자기가 제공하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땀을 닦으며 식당 문을 나서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즐겁고 그들이 먹을 음식을 손수 만들고 준비하는 과정이 즐겁고 식당운영에 보태어달라고 익명으로 보내온 작은 성금봉투
나 물자를 받았을 때 또 한 번 즐거움을 느낀다고 한다.

우리 부모 된 사람은 자식들이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즐겁고 또 그들이 착한 일을 해서 남들에게 칭찬을 받을 때 또 한 번 은근한 즐거움에 잠긴다.늙어서는 자식들의 정성어린 효심이 가슴에 와 닿을 때 한 번 더 즐겁다. 그 외에도 삶의 현장에서 느끼는 다양한 즐거움은 이루다 헤아릴 수 없으리라.

인생의 후반기를 살고 있는 나는 요즘 내 나름대로의 세 가지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다. 그중의 하나가 충분한 운동이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살고 있는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골프 연습장이 있다. 짜두리 시간이 날 때 마다 하루에 2~3회씩 그곳에 나가서 땀을 흘린다. 석양 무렵 흠뻑 젖은 몸을 끌고 집에 들어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저녁식탁에 앉아서 마시는 반주야말로 천하의 일미다. 구수한 된장국과 어우러져 칼칼한 목을 축이며 빈 뱃속을 짜릿하게 적실 때의 술맛은 먹어본 사람이 아니면 그 맛을 모른다. 당나라 현종이 양귀비에게 받아먹었던 술맛도 이만은 못했으리라. 한두 잔의 반주로 주흥이 오른 나는 정원으로 나간다. 다투어 피고 있는 꽃들이 뿜어내는 봄 향기 속을 거닐면서 무엇인가를 중얼거린다. 향긋한 향기를 토하며 돋아나는 정원수의 새 움과 술기가 조화되어 젊음으로 리모델링된 감정이 시상을 잡은 것이다. 서재로 돌아와 문자화 될 때까지 시상이 도망갈까 봐 중얼중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컴퓨터를 켜놓고 시상을 정리해서 작품이 되도록 몇 번이고 퇴고를 거듭한다. 그 작업이 끝나면 작품의 주제에 맞는 화면과 음악을 골라 영상화한 다음 몇 군데의 카페에 띄워놓고 감상에 젖어들면 어느새 새벽이 온다.

이러한 것은 나 혼자만의 즐거움은 아닐 것이다. 술맛과 자연을 알고 문학을 하는 사람이면 그들 모두의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고산 윤선도는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술잔 들고 홀로앉아 먼 산을 바라보니/
그리던 임 온다고 한들 즐거움 이보다 더하랴/
산이 말하거나 웃지 안 해도 나는 그저 좋아라./
고산 윤선도가 전남 해남에서 은거하고 지낼 때 1642년(인조20년)에 지은 산중신곡-山中新曲 중 한 작품이다. 벼슬하지 않고 자연 속에서 술과 벗하며 지내는 즐거움을 시조로 읊고 있다.

*맹자(bc372~289)의 군자유삼락: 1.부모형제가 같이 사라계시고 2.하늘이나 남에게 부끄러운 일 없고3. 천하의 영재를 얻어 교육하는 것
*고산 윤선도(1587~1671): 조선조 중엽 선조임금과 광해군 시절의 문신

/月岩 이희정<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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