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상면 월륜동 만인들이 등장을 내기를 "순제에 담겨진 물을 윗 논의 경작자들이 '아랫 논에' 물을 대도록 허락하지 않으니, 특별히 분부해주십시오."라고 하였다.

제사 : "제언에 저장된 물은 위가 차면 아래로 흐른 것이 당연한데 어찌하여 이익을 독차지 하여 이처럼 번거로이 소장을 올리게 하는가. 특별히 나누어 물을 대도록 분부한다."

부안 민장치부책(民狀置簿冊), 5월 13일 논에 댈 물을 놓고 다툼이 일어 피해 월륜동 주민들이 부안군수에 소지(所志)를 냈고 부안군수가 물을 댈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제사(題辭)를 내린다.

이처럼 1901년 3월부터 8월까지 당시 부안지역의 사법행정체계와 주민의 생활상을 알아볼 수 있는 '부안 민장치부책'이 발간됐다.

민장치부책은 주민들이 올린 소지(민장)와 그에 대해 관이 내린 제사를 간략히 기록한 것이다.

관은 주민이 낸 소지 원본에 제사를 내려서 당사자에게 돌려주고 그 내용을 베껴놓았는데 그것이 바로 민장치부책이다.

이 책에는 구휼, 조세-부역 감면과 신분제 폐지 이후에도 남아 있는 백정이라는 굴레들이 청원을 통해 기록돼 있다.

특히 3월에는 '경작을 뺏으려 한다'는 '탈경'문제가 4, 5월에는 가뭄으로 인한 물 싸움이 많이 제기되고 본격적인 농사철에는 제기된 소가 적다.

이에 대해 옮긴이 김선경씨(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책임연구원)는 "조선시대 법전대로 '춘분일이 되면 중요하지 않은 송사는 받아들이지 않고 추분일에 다시 송사를 개시한다.

'고 했던 원칙이 이 시기에도 어느 정도 적용됐던 것"으로 설명했다.

'부안 민장치부책'은 1901년 대한제국 때의 기록으로 갑오개혁과 광무개혁을 거치는 격동기의 사람들의 삶의 변화, 사회적 관계의 변화, 국가 통치체제의 변화, 사법 제도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부안문화원이 발간했다.

/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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