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에서의 청년 요셉(제 2회)











감옥에서의
청년 요셉(제 2회)

 

보디발의
집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된 요셉은 감옥 생활이라는 또 다른 인생을 경험한다. 요셉이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가 노예이자 죄수의 신분이었던 만큼 특별한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주인 보디발의 집안에 있는
감옥에 갇혔는데, 이곳으로 죄수 두 명이 더 들어오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은 이집트의 바로왕을 섬기는 요리사들이었다. 한 사람은 바로 왕에게 술을
바치는 시종장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빵을 바치는 시종장이었다. 신의 아들 바로왕의 먹거리를 책임진 막중한 직책의 신하들이었다. 보디발은 요셉으로
하여금 이 두 시종장들을 시종 들게 했고, 요셉은 그들을 성실하게 맞아들였다. 이것을 보면 요셉은 최하위의 죄수였던 것 같다. 비록 그들이 죄수의
몸으로 감옥에 들어오긴 했지만 이들은 단순 범죄자라기보다는 오히려 정치범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요셉이
감옥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두 시종장들은 뒤숭숭한 꿈을 꾸게 된다. 요셉은 그들의 근심스런 얼굴을 발견하면서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안색이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왜 그러십니까?” 그들이 대답한다. “우리가 꿈을 꾸었는데 해몽할 사람이 없어서 그러네.”
이 두 사람은 요셉에게 자신이 꾼 꿈을 자세하게 말한다. 그러자 요셉은 그 꿈을 해몽해 준다. 이야기인즉 술을 빚는 시종장은 삼일 후에 복권되어
예전처럼 바로 왕에게 술을 올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요셉은 처음으로 자신은 이 구덩이 감옥에 들어올 만한 일을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강제로 이곳에 끌려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그 시종장이 바로왕에게 돌아갈 때 자신을 기억해 줄 것을 간청한다. 요셉은 이것을 자신의 무죄를
밝히고 자유인으로 살 수 있는 호기로 여기는 것 같다. 하지만 빵을 구워 바로왕에게 바치던 시종장이 꾼 꿈은 전혀 다른 운명을 예견하는 것이었다.
그는 나무에 매달려 목을 베어 죽음을 당하고 그의 시신마저 새들이 쪼아 먹게 되는 것이다. 이 두 사람에 대한 이 같은 꿈 해몽은 곧 현실이 되어
술을 빚던 시종장은 예전의 직책을 돌려받고 다시 왕을 섬기게 된다. 반면 빵을 굽던 시종장은 처형되고 만다. 하지만 술 시종장은 왕궁으로 돌아간
후 자신의 처지를 솔직하게 알렸던 요셉도 그의 간청도 기억하지 못한다. 때문에 요셉은 그렇게 2년을 더 감옥에서 살아야했다. 그 기간은 어느 때보다
길고 절망스러웠을 것이다. 술 시종장이 감옥을 떠난 후 자신의 결백을 밝히고 자유인이 되기를 바라는 요셉의 희망과 현실의 괴리는 감옥에서의 시간을
더욱 더디게 느끼고 힘들게 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한결 성숙해진 젊은 요셉을 발견하게 된다. 보디발의 집에 팔려오기 전 요셉은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부모에게 형들을 고자질하는 한갓 철없는 부잣집 아들이었다. 더욱이 그의 형제 11명이 그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는 것은 예언적인 성격을 넘어서
그의 무의식을 반영하는 것으로 볼 때 그의 대단한 욕심을 짐작하게 해준다. 오죽하면 같은 피를 나눈 형들이 어린 동생을 죽이려 하고 아버지를 속이면서까지
팔아 넘겼겠는가?

 

그러나
이제 요셉은 다르다. 그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살아야 하는 죄수의 몸이지만 같은 처지에 있는 술 시종장과
빵 시종장의 얼굴을 살필 줄 안다. 그들의 안색이 심상치 않음을 알고는 그들에게 안부를 묻는다. 예전의 요셉이 아니다. 모든 것을 가졌을 때 그는
아무 것도 보지 못했던 이기적인 소년이었다. 몇 년 후 그는 본인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모든 것을 잃고 만다. 가족도 잃고 유산도 잃고 자유도 신뢰도
잃는다. 하지만 그는 이제 다른 사람이 되고 있다. 동료의 안색을 살피고 이들의 사정과 고민을 해결해 주려는 적극성마저 지닌다. 요셉의 인생 전체를
알고 있는 성경 저자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므로 요셉의 주변은 모두 잘되어 간다고 말하지만 요셉 자신의 운명은 점점 절망의 길로 빠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요셉은 변하고 있었다. 인격도 자세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요셉은 미래의 자기 모습을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을 아름답고 성숙하게 키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그릇을 하나님께서는 결코 소홀히 다루실 리 없다. 그렇게 요셉은 청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계속)

/한일장신대 계약교수 채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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