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원지방부(부안)
부안군이 지난 2000년부터 추진하던 보안면 우동리 일대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지 복원사업이 사실상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그 이유에 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다.

주민들은 지난 2000년부터 시작한 반계선생 유적지 복원에 많은 기대를 갖고 지켜보고 있었다.

실학의 비조로 일컫는 유형원 선생은 보안면 우동리에 들어온 지 20년 되던 해인 1673년 그의 이상을 수록한 ‘반계수록’ 26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지 1백여 년 뒤에 와서야 그의 인물됨과 ‘반계수록’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재평가를 받기 시작해 당시 영조대왕은 그의 수록집을 읽고 칭찬하면서 ‘이를 세상에 널리 알리라’고 명했다.

1770년, 이런 경로 끝에 ‘반계수록’이 세상에 나왔으며 실학의 이론을 최초로 전한 책으로 알려지게 됐다.

반계 유형원선생 유적지는 보안면 우동리 775-5번지에 있는 ‘사당’과 근처에 있는 ‘유적비’ 그리고 병사들을 훈련하기 위하여 만들어 놓았다는 ‘돌기둥’이 있다.

이런 이유로 평소에도 수학여행 등 많은 학생관광객이 마을을 찾았으며, 부안군의 유적지 복원 발표 이 후, 마을발전의 청사진을 기대한 주민들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부안군은 사업을 집중적으로 추진하지 못하고 지난 2005년 사업비 도비와 군비 4억원을 마련해 복원에 들어갔으나 더딘 진행으로 결국 사업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지난 2007년 사업비 전체 4억 원 중 3억 3천만원을 반납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사업비 반납은 사업을 담당하는 주무과의 책상행정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높다.

유적지 복원에 대해서만 떠들었을 뿐 대상지에 대한 투기 감시가 소홀해 보상을 노린 나무 식재와 지가 상승을 막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보상비가 턱없이 오르는 통에 결국 불어난 사업비를 감당하지 못하고 사업비를 반납하는 지경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부안 관광을 부르짖는 자치단체장의 뜻과, 또한 관광을 통해 지역을 알리고 농외소득을 기대했던 주민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주무부서가 일처리를 안이하게 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주민들은 한결같이 사업비의 반납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사업의 재개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평생을 이 마을에서 살았다는 모씨는 "반계 선생의 흔적이 유적지 복원을 통해 국가 기념물로 승격되도록 하는 것이 부안군의 책무인만큼 이제라도 군이 적극적인 행정을 통해 반계선생의 유적지 복원을 서둘렀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유적지의 입구에서부터 부안군의 관심은 낮아 보인다.

유적지 진입을 알리는 안내판이, 개인이 설치한 알림간판의 크기보다 작아 관광객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등 ‘유적지 알리기에 소홀함이 크다’는 지적이어서 보다 주민들을 생각하는 적극적인 행정처리가 아쉽기만 하다.

민심은 천심이다.

잔뜩 기대감을 높이기만 하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는 행정으로는 결코 민심을 얻지 못한다.

부안군의 이후 추진이 기대되고 있다.

/부안=강태원기자k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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