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석 국회의원
예년 국회는 농사 일정과 비슷했다. 땅이 얼어붙은 겨울철에는 국회 역시 다음 해를 준비하며 비교적 조용한 시기를 보내고 봄이 오면 그간 준비했던 계획들을 하나씩 실행해 나간다. 모내기철 즈음해서는 전년도 예산이 얼마나 잘 쓰였는지 심사하며 바빠지다가 가을이 오면 국정감사로 1년을 갈무리하고, 내년도 예산과 법률안을 심사·통과시키면서 한 해를 마무리 짓는다.
 
 섭리 역행한 올 국회농사
 
그러나 올 국회 농사는 천재지변과 역행의 반복이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1월 입법전쟁과 본회의장 점거농성, 결국 날치기로 귀결된 언론악법 직권상정, 이에 따른 거리투쟁과 대국민 홍보, 검찰의 무리한 수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의 낙마, 그리고 미처 슬픔과 분노를 추스르기도 전에 맞닥뜨린 김대중 대통령의 서거…. 이 모든 일이 단 1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것을 누가 실감할 수 있겠는가?

정기국회는 한 해 동안 정부가 해왔던 각종 정책을 평가하는 자리다. 어디에 얼마나 예산을 사용했는지, 부실하게 집행하거나 날려버린 예산은 없는지, 내년에는 어떻게 예산을 써야하는지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가을걷이에는 특별히 할 일이 많다. 작년 말 MB악법으로 규정했던 법은 미디어법을 포함 총 85개다. 올해 초부터 계속 저지투쟁을 벌여왔지만, 아직 28건의 MB악법이 남아 있다. 게다가 비정규직보호법, 세종시법 등 새로운 법안들도 제기된 상태다. 이들마저 한나라당이 일방 처리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

충분한 논의를 거치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이후에 국회를 통과시킬 것을 끊임없이 주장할 것이다.

정책의 방향과 구현은 결국 예산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예산에서는 미사여구와 정치적 수사가 용납되지 않는다. MB정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정책에는 예산을 증액할 것이고 중요치 않다고 생각하면 뺄 것이다. 같은 돈을 어디에 쓰느냐가 바로 정부의 국정기조의 가늠자가 될 것이다.

4대강 사업에 투입될 예산은 총 22조 2천억원(내년 8조6천억원)이다. 이 정도 예산이면 공공임대주택 125만 가구를 지을 수 있다고 한다. 전북 가구 수가 대략 70만 가구이니 한 집 앞에 두 채 꼴로 집을 지어줄 정도로 어마어마한 돈이다. 문제는 이 예산 대부분이 서민경제를 갉아먹고 나왔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청년실업 예산 1349억원 삭감,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최저생계비 인상…. 서민과 약자를 위한 알곡들이 4대강 쭉정이에 밀리고 있는 판이다. 이 역시 MB악법 못지않게 반드시 막을 사업이다.

민주당은 정기국회에 임하면서 원내외 병행투쟁을 근간으로 삼았다. 주중에는 국회에서 법안과 예산 싸움을 하고, 주말에는 시민들을 만나 미디어법 설명도 하고 힘을 모아주실 것도 부탁드린다는 계획이다.
 
 양손에 낫을 든 심정으로
 
국회에는 원래 가을이 없다지만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하니 몸이 더욱 바빠지는 것 같다. 특히나 필자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모든 상임위의 법안이 한 곳으로 모이는 법사위와 국가 전체의 예산을 심사하는 예결특위를 동시에 맡게 되었다. 국정감사의 주요 기조인 검찰개혁도 법사위소관이다. 양 손에 낫을 들고 추수에 앞장서라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필자는 집안 농사를 거들며 자라온 농촌 출신이다. 이번 국회를 콤바인 국회로 치르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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