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은 상상력의 보고다. 어쩌면 그렇게도 기상천외한 미감을 감쪽같이 숨기고 있다가 때에 알맞게 드러내는 것일까? 울긋불긋 물든 가을 단풍잎만 보아도 그렇다. 진초록 수박색으로 영원할 것 같던 나뭇잎들의 어디에 그렇게도 농염한 진홍의 열정을 담아둘 수 있었단 말인가? 들여다볼수록 신비하다. 투명하게 맑고, 선명하게 붉은 마음을 드러내고 있는 나뭇잎들은 자연이 숨겨 놓은 상상력의 진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나뭇잎들이 미처 지기도 전에 날씨는 짓궂은 상상력의 붓질을 마다하지 않는다. 냉혹한 백설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도 않은 날씨, 아직도 분명한 가을 그 잔존 세력이 만만치 않음에도 자연은 아랑곳하지 않고 차가운 상층기류의 어느 한 자락을 지상에 보내어 힘찬 상상의 붓질로 지상을 덮어버리기도 한다. 망연히 제 삶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 인간들에게 계절의 순환을 기억시키기라도 하려는 듯이 눈보라 붓질로 겨울 화폭을 그려낸다.

사연(事緣)에 매달려 사느라 눈앞만 바라보는 인간으로서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상상력을 자연은 아무렇지도 않게 구사한다. 자연이 구사하는 상상력은 아름다움의 원천이자 의미를 만드는 근원이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오래된 금언을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자연은 스스로 그렇게 존재함으로써 아름다움과 의미를 생산해 내는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

 <멋진 작품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상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예술적 지성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예술적 지성이란 현실과 상상력 사이의 점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상상력은 가능성을 파악하고, 지성은 그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가공한다.>(스탠데이비스『예술가처럼 일하라』에서)
 
자연처럼 멋진 인생을 만들어가는 데도 상상력이 필요하다. 인생에서 상상력은 꿈의 빛깔로 행복을 그린다. 꿈을 꾸는 사람에게만 상상력은 필요한 물감을 제공한다. 그 물감으로 행복을 그리려면 지성의 힘을 빌려야 한다. 현실에 결핍되어 있는 행복의 요소가 무엇인가? 상상의 세계를 현실로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예술적 지성은 아름다움이 힘이 되게 하고, 즐거움도 의미가 되게 한다.

멋진 인생의 궁극적인 그림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사랑하는 사람치고 예술가 아닌 사람은 없다. 사랑이 예술이다. 사랑하면 누구나 고귀해지고, 사랑하면 언제나 즐거워진다. 그래서 사랑은 예술이요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가 예술가다. 사랑 예술가는 사소한 일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평범한 사물에서도 의미를 찾아내는 힘을 지닌다. 사랑은 힘이다. 사랑의 힘은 순전히 상상력이 가져다 준 선물이다. 그 사랑의 환상을 현실이 되게 하기 위해서 사랑하는 이들은 지성의 힘을 빌려야 한다.

사랑은 환상이고 열병이며 무모한 자기소멸의 충동이다. 즉흥적으로 세레나데를 부를 수도 있고, 심각한 과장마저 하찮은 다반사로 여긴다. 미운 아름다움마저 예쁜 미움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사랑은 환상이다. 환상이 현실이 되는 사랑을 위해 사랑은 언제나 불안한 자의식을 떠돈다. 건조한 삶에 나그네의 옷을 입히고, 맹목의 저돌성에 명상의 여백을 권한다. 예술적 지성은 인생을 충전시켜 사랑하되 아름아운 의미가 되게 한다. 자연의 모방으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예술적 지성은 자연을 닮은 사랑이 되기 위한 결정적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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