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의 실수로 같은 조사를 반복해 받은 성폭행 피해 아동과 그 부모가 입은 '2차 피해'를 인정, 국가에 배상 책임을 지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명백한 과실이 없는 한, 소극적인 수사 행태로 인한 스트레스나 피해자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조사 방식 때문에 느낀 수치심 등의 2차 피해는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 2부(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성폭행 피해자인 A양과 그 부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이들에게 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1일 밝혔다.

A양 등은 신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며 경찰에 고소장을 접수한 뒤 피해사실을 진술하며 캠코더로 녹화했지만, 경찰의 실수로 녹화 내용이 모두 지워져 다시 피해 사실을 녹화해야 했다.

또한 고소한지 한 달이 지난 후 경찰이 첫 조사를 실시해 가해자가 증거를 은폐할 시간을 줬고, 아이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장시간 조사 등으로 인해 2차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는 경찰의 진술녹화 중 과실만을 인정, "불필요한 반복 조사로 인해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A양에게는 300만원, 그 어머니에게는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여기에 A양의 아버지가 입은 정신적 피해도 인정해 위자료 100만원을 주라고 판결했고, 대법원도 "진술녹화 내용의 멸실 부분 외에는 위법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한편 "검·경찰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었다"며 A양 등과 함께 소송을 냈던 나머지 성폭행 피해 아동과 그 가족들은 수사기관의 과실이 인정되지 않아 배상을 받지 못했다.

이들은 수사기관의 소극적인 수사, 부적절한 심문 방식, 합의 종용, 공개된 장소에서의 조사 등을 지적하고 나섰으나, 1·2심 재판부가 모두 이를 인정하지 않자 상고를 포기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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