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는 풍수지리상으로 보면 행주형(行舟形)이다










전주는 풍수지리상으로 보면 행주형(行舟形)이다. 행주형이란 사람과 재물을 가득
실은 배가 돛을 높이 달고 막 항로를 떠나려는 배를 붙잡아 매어놓은 형국이란 뜻. 이와 같은 행주형 때문에 견훤은 완산부성에 후백제 왕궁을 세웠다고도
한다.

특히 옛지명은 지역 형세나 설화 등 다양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어 중요한 상징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지명은 해당지역의 인위적 변천사를 배경에 깔고 있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주의 옛지명은
일제에 의해 또 행정가들의 무분별한 답습에 의해 현재는 반 이상이 사라진 실정이다.

‘서말의 구슬도 꿰어야 보배’. 전주문화원(원장 김광호)은 향토사 발굴정리 차원에서 마련한 2001년 첫째권에 이어 올해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 둘째권을 내놓았다.

이로써 절반의 성과를 거뒀던 ‘지명으로 보는 전주 백년’은 완성된 셈이다. 첫째권과 둘째권의 경계는 1957년. 첫째권은 일제시대 때 전주시로 확정됐던 지역을 조사대상으로 했고, 둘째권은
1957년 행정구역의 확장을 기점으로 전주시에 편입된 지역이 주 대상이다.

이번에 출간된 둘째권의 주 대상은 팔복동 우아동 호성동 전미동 삼천동 평화동 효자동 등 주로 전주의 변방부가
해당된다.

이 책의 의미는 두가지. 이미 도시개발이 이뤄진 지역의 옛모습을 지명을 통해 돌아보는
일이고, 둘째는 앞으로 개발이 이뤄질 지역의 개발전 모습을 담아두고자 하는 것이다.

 책임조사에 나선 이길재 박사는 사람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고 말한다. “이번
조사대상이 주로 변두리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만나는 일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다. 여름에는 농사철이어서 어려웠고,
겨울에는 또 미나리 경작 때문에 어려웠다.”

이 박사는 또 우리말을 천박시하는 풍조도 통박한다. 대표적인 것이 사람들의 옛
지명 기피현상. 이들에게서 아름다운 우리의 옛지명을 끌어내기에는 적지않은 노력이 필요했다. “어렵게 접한 사람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대부분 현재 불리고 있는 행정지명이었다. 오랫동안 목적을 설명하고 나면 어렵사리 옛지명이 나오지만,
역시 비하하는 느낌을 가눌 수 없었다.”

이 책은 답사지역의 현장사진과 지명의 변천사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김영애기자 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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