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베르그송, ‘웃음’(세계사)










앙리 베르그송, ‘웃음’(세계사)

최명표

우리들은 요새 유행하는 코미디 프로그램이
방영될 시간이면, 온 식구가 텔레비전 앞으로 우르르 몰려 앉아서 일주일간의 스트레스를 풀면서 왁자지껄하게 웃는다.
아이들은 유명 개그맨의 몸짓과 억양을 모방하는 것을 친구들에게 자랑하기를 서슴지 않으며, 그들의 장래 희망은 유명 개그맨이 되는 것이다. 한편
어른들은 개그맨들이 웃기는 장면을 보면서도 정작 그들을 폄하하고, 직업을 천시하는 발언을 일삼는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기원전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유명한 ‘시학’에서 희극을 가리켜 ‘보통인 이하의 악인을 모방한 것’으로 정의한 구절을 읽은 것일까? 그는
비극과 서사시에 대해서는 여러 페이지를 할애하면서도, 희극에 대해서는 지극히 가난하게 언급하였다. 사양의 문학이론은 그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서
발전해 온 탓에, 비극이나 슬픔에 비해 미진하게 연구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희극의 비극성이다.

이에 웃음의 철학적 조명을 시도한 이가 20세기 프랑스의 생철학을 대표하는 앙리 베르그송이다. 그의 철학적 관심은 19세기의 유물론과 결정론에 반대하고, ‘기계적인
것/유연한 것, 자동화된 것/생명적인 것’을 대조시키며 인간의 삶의 기저에서 부단히 지속되는 운동성과 시간성을 규명하는 데 생애를 바쳤다. 그는
1900년 ‘웃음―희극성의 의미에 관한 시론’을 발간하여 프랑스 국내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의 번역이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것은 전적으로 코미디 프로를 즐겨 시청하면서도, 대화에서는 코미디의 저질성을 심판하는 한국인 고유의 근엄함과 위선적 태도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웃음에 관한 대표적인 이론은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월 이론’은 상대방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인식하는 부류들이 자신에게 고통이나 피해를 입히지 않는
과오나 추악상을 보여주는 인물을 향해 심리적인 우월적 지위를 확보함으로써 웃게 된다는 것이다. 이 이론을 주장한 사람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홉스 등이다. ‘대조 이론’은 칸트나 프로이트에 의해 주장된 것으로, 예상과 결과의 불합리한 대조에 의해 웃음이 촉발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예컨대,
덩치 큰 남자에게서 가는 목소리가 들릴 때 나오는 웃음이 그 보기이다.

베르그송은 선행이론들의 한계를 인식하고, 웃음을 ‘생명적인 것에 부가된 기계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그는 희극성의 전제조건으로 작용하는 관찰자의 무감동성에 주목하고,
이 웃음의 성격을 집단적 의미로 파악하여 웃음의 사회적 기능을 ‘사회 생활을 방해하는 어떤 결점에 대한 징벌’로 규정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웃음의 유용성이나 공리성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다루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왜냐하면 인간은 단순한 계기나, 생리적 작용에 의해 웃기도 하며,
아울러 사회의 부조리에 대해 조롱할 줄 알기 때문이다. 웃음의 위력은 악의 심판자이면서, 동시에 가장 성스럽거나 지극히 정직한 사실의 가치조차
무화시켜버릴 정도로 파괴적이다. 베스트셀러였던 움베르토 에코의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에서 노회한 수도사는 지적 호기심에 사로잡힌 젊은 무수한
수도사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그 원인은 다름아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이었다. 곧, 웃음은 존재만으로도 신에게 도전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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