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단 21년을 맞는 임실출신 정우영 시인(50)이 세 번째 시집 ‘살구꽃 그림자’(실천문학사․값 8천원)를 펴냈다.

두 번째 시집 ‘집이 떠나갔다’(2005) 이후 5년만에 나온 시집. 도종환 시인은 그에 대해 “그는 대지의 시인이다.

대지의 모성성으로 돌아가는 시인이다.

대지 안에 깃든 고향과 어머니의 등불과 무너진 아버지의 집을 찾아 돌아가고 있는 회귀의 시인이다.

그는 대지의 생명력으로 일어서는 식물성의 시인이다.”라고 간파했다고 한다.

1989년 ‘민중시’로 데뷔한 이후 사회 참여적 경향을 견지했던 저자는 사회학적 테마로부터 생태학적 상상력으로 이어져온 이전 시집을 통해 시언어의 본질적인 변화를 겪었고 이번 시집에서는 ‘큰 역사’의 주름 속에 가려진 ‘작은 역사’를 되살리고 있다.

 “나는 마흔아홉 해 전 우리 집/우물곁에서 베어진 살구나무이다./내가 막 세상에 나왔을 때 내 몸에서는/살구향이 짙게 뿜어져 나왔다고 한다./오랫동안 등허리엔 살구꽃 그림자가 드리워졌고/목울대엔 살구씨가 매달려 있었다./차츰차츰 살구꽃 그림자는 엷어졌으나/서러운 날 꿈자리에서는 늘 우물곁으로 돌아가/심지 굳은 살구나무로 서 있곤 한다.<중략>그러면 살구나무가 기록한 경전이 내 눈에서/새록새록 돋아나와 새콤하게 퍼지는 우주의 기밀,/슬그머니 펼쳐 보이기도 한다./언젠가 별 총총한 그믐날 밤 나는,/가만히 눈 기울여 천지를 살피다가/다시 몸 부려 살구나무로 돌아갈 것이다./나는 태어나기 이전의 역사이다.”  
‘살구꽃 그림자’   전작 시집에서 ‘생강나무’로 이야기를 시작했던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살구나무’의 목소리로 시집의 문을 연다.

첫 행에서 발화자의 목소리는 49년 전 베어진 살구나무의 목소리가 포개져 낯선 시간대의 울림이 된다.

정우영시인
시인의 출생은 살구나무의 베어짐에서 이어져온 것으로, 이 시에는 삶과 죽음이, 전생과 후생이 꼬리를 문 뱀처럼 둥글게 만나고 있다.

은밀하고 나지막하게 선언되는 결구에서 ‘나’의 ‘역사’는 흔히 강으로 비유되는 역사의 일방향적 흐름을 거스른다.

“우주의 기밀”을 간직하고 있는 살구향은 시간에 운명지어지지 않는 “생의 촉”(‘산목련’)을, ‘작은 역사’의 생생함을 일으켜 세운다.

천양희 시인은 “그의 시에는 글썽이는 마음을 들어 그믐을 앓는 자의 곡(哭)! 하며 내지르는 비명이 있고 바람의 호출을 받은 거친 들판 같은 생기(生起)가 있다. 새로 온 과거를 읽고 우주의 기밀을 펼쳐 보이려는 그의 의지는 그의 내밀한 힘이다. 그는 사람을 지키려는 마음이 심장보다 먼저 뛰는 시인이다. 슬픔을 거쳐 충만함으로 나아가는 시인이다.”고 평가했다.

숭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1989년 ‘민중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마른 것들은 제 속으로 젖는다’(1998)와 ‘집이 떠나갔다’가 있으며 시평 에세이 ‘이 갸륵한 시들의 속삭임’을 펴냈다.

/이병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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