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으로/고 이병훈 시인 유고시집 '하루 또 하루'

“임종하기 전 병원에서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봉투 속에는 '하루 또 하루'라는 시집명과 함께 162편의 시들이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고 이병훈 시인의 아들 이인기씨가 간직했던 그 봉투안의 시들이 ‘하루 또 하루’(퓨전디자인)로 출간됐다.

시인은 연작시를 많이 쓴 것으로 유명하다.

자기 땅에서 남의 나라 소작을 부쳐먹던 일제시대 백성의 쓰라림과 산업화로 무식하게 황폐해지는 우리 농촌의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글썽거리는 소년의 꿈으로 차곡 차곡 접혀있는 연작시 ‘달무리의 작인들’(67편)을 군산문화원장 시절 시문학에 연재한 이후 1992년 문예한국에 ‘불꽃날개’(58편), 1993~4년 조선문학에 ‘소리’(60편), 1993~4년 문학세계에 ‘나무새’(60편), 1994년 자유문학에 ‘휴전선의 억새’(60편), 1996년 시문학에 ‘탁류’(100편), 2000년 ‘변산골짝에 이는 바람’(70편)등등 장장 500편에 가까운 연작시를 끊임 없이 발표했다.

시인이 25년에 태어난 것을 감안하면 고희를 전후해서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친 것. 90년대에 들어서만도 벌써 1,300여편의 시를 15권의 시집으로 엮어냈었다.

정양 시인은 발문을 통해 “그는 우리나라 근대사의 가장 아픈 매듭인 갑오농민전쟁, 그리고 한국전쟁의 상처가 민족사에 오래토록 쓰라린 지리산을 각각 방대한 서사시로 조감하면서,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그늘 속에서 비참해진 현대인들의 황폐한 삶을 되새김질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또 정양 시인은 시어의 사용빈도를 따지는 접근법은 바람직하지 않으나 이 유고집을 살피는데는 도움이 된다며 많이 사용하는 시어를 분석했다.

시인의 시는 ‘풀’과 ‘풀밭’을 밑그림 삼아왔으며 이 시집에도 풀 이미지의 시어가 186개나 쓰였고 그 중 ‘풀’이라는 음절이 쓰인 시어만도 41개나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유고시집에는 ‘물’이나 ‘물이미지’를 지닌 말들이 218개나 쓰였고 ‘물’이나 물이라는 음절이 섞인 말은 112차례나 나온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소리’(59회)와 ‘바람’(46회)로 그 소리와 바람들은 모두 물을 만나 영원을 가늠하는 구실을 충실히 수행한다고 한다.

그래서 발문 제목이 ‘이승과 저승의 적막한 교감 -물과 소리와 바람과 풀의 변주’다.

한편 고 이병훈 시인은 군산 출생으로 1959년 ‘자유문학’으로 등단했으며 '제14회 전라북도 문화상' 문학부문 수상(1973), '군산시민의장' 문화장(1976), '제1회 모악문학상'(1993), '제38회 한국문학상'(2001) 등을 수상했다.

/이병재기자 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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