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은 메모다”










“발명은 메모다”

발명가가 바라보는 발명의 가장 기본 조건은 무엇일까. 한 달 평균 약 10여건씩 특허 출원을 하는 김봉근씨(39)는 의외로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를 내린다.

최근 2년 동안 무려 200여건의 무더기
특허를 출원한 김씨의 직업은 발명가. 정확히 말하면 특허를 필요로 한 일반 기업에게 대여해주고 사례를 받는 신종 특허임대업을 하고 있는 주식회사의
대표다.

그는 우리 주변 모든 사람들이 ‘발명가’가 될 수 있고 또 자질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발명은 삶의 불편을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나 발명을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발명가가 못 되는 이유는 메모를 안하기 때문입니다”

메모 예찬론을 펴는 그가 국내에서 가장 많은 특허를 단기간에 출원한
점도 바로 이 때문이다.

그가 발명의 길에 접어든 배경은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 대학 교수로 있던 집안 친척이 국내 최초로 ‘마그네틱 자성잉크’를 개발,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은 당시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많은 인쇄매체가 ‘막대한 수입 대체 효과’를
거둔 쾌거라며 대서특필한 기사를 보고 발명가를 꿈꿔왔다는 것이다.

이후 대학에서 전산통계학을 전공한 김씨는
한 때 정치 지망생으로 발명과는 동떨어진 생활을 보냈다. 그러나 숨겨진 자질은 그를 발명의 동선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지 않았다.

“짜장면으로 탕수육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 같은 다소 엉뚱한 생각은 그를 전국에 100여개가 넘는 프랜차이즈 체인망을 갖추게 한 사업가로 변신시켰다. 그가 특허 출원한 ‘짜장탕수육’
덕택이었다.

하지만 그를 발명가 대열에 오르게 한 것은
짜장탕수육이 아니었다. 경제한파 앞에서 그 또한 좌절의 고배를 마셔야 했고 그렇게 2년여의 허송세월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지난 2000년 봄, 서울의 중견 건설업체와 특허 전용실시권을 맺으면서 발명가 김봉근의 이름은 날리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특허 출원을 위해 전주공업대 창업보육센터에
둥지를 튼 것도 이 때다.

건설업체가 매년 신기술을 개발해야 공공공사
수주시 유리한 점수를 얻는데 착안, 건설분야 특허 출원에 온 힘을 쏟았다. 그가 얻어낸 특허 출원가운데 상당수가
건설쪽에 집중해 있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생활고를 여기에서 해결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발명은 특별할 게 없다. ‘탕수육 소스의 제조방법’ ‘폐타이어를 이용한 담장구조’
‘냉매기구를 갖춘 음료저장용기’ 등 특허 제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는 것 들이다.

그의 발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자신이 특허를 신제품으로 상품화 해 기업가로서 다시 옛 명성을 되찾는 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김씨는 상상력을 상품으로 전환해 삶의 질을
보다 좋게 하려는 자신의 원대한 포부가 실현 될 날이 꼭 다가올 것으로 믿고 있다. 이를 위해서 이론을 모르더라도
실험하고 또 실험하고 실험을 반복해서 발명품을 생산하고 있다.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실험에 성공했던 에디슨의 백열등처럼 우리 주변의 삶을 업그레이드
할 수 있도록 매일 상상력이 밑받침된 실험과 씨름을 벌이고 있다.

김씨는 ‘코스닥 등록 업체가운데 사상 최초 발명가 대표’라는 타이틀을 듣고 싶은 꿈을 실현하기위해 올해도 땀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사춘기 시절 발명의 꿈을 갖게 한 친척 교수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발명의 안내자가 되기위해서다./신정관기자 jkp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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