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제 벽골제 수문

전북향토문화연구회(회장 이치백) 논문집 ‘전라문화연구’ 21집이 간행됐다.

이번 21집에는 ‘김제 벽골제는 방수제라는 주장’과 함께 ‘실학의 전도사로 알려진 성호 이익이 전라도에 대한 지역적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논문, 특히 ‘속-150명의 어록으로 엮은 전북인물사’(관련기사 16면)등이 눈길을 끈다.

주요 내용을 정리했다.

▲벽골제는 저수지가 아니다

김환기 전 전북대 교수는 ‘김제 벽골제의 토목공학적 고찰’을 통해 벽골제는 저수지가 아니라 해수의 침해를 막기 위한 방수제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김제시 일원에 조개무덤이 있었다는 기록을 볼 때 백제시대에는 바닷물이 벽골제 상류까지 들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그가 토목공학 관점에서 제기한 의문점 가운데 하나는 저수지로써 높이가 너무 낮다는 것. 벽골제 높이가 5.7m라고 하는데 3.3㎞나 되는 제방에 이같이 낮은 높이의 저수지는 유사사례를 찾기 힘들다는 주장이다.

또한 제방 상, 하단 폭을 감안할 때 점토심 시공이 불가능하고 점토심이 없다면 누수를 방지할 수 없다는 점, 통수문 5개(개당 폭 4m)로는 홍수가 나면 수위 수량조절이 불가능 하다는 점 등을 방수제 근거로 제기하고 있다.

▲이익은 전라도에 편견을 가졌다

김재영 전북대 명예교수는 ‘이익의 ‘성호사설’ 논고’를 통해 실학의 전도사로 알려진 성호 이익이 그의 저서 ‘성호사설’에서 전라도에 대한 지역적 편견을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이익은 ‘성호사설-천지문’에서 전라도의 강을 얘기하며 ‘재주와 덕망 있는 자가 드물게 나오니 사대부가 살 곳이 못된다’고 얘기했지만 영남은 ‘풍기가 모아졌고 흩어지지 않으니 옛날 풍속이 아직도 남아 있고 명현이 배출하여 우리나라 인재의 부고가 되었다’고 추켜세웠다는 것. 특히 그의 잘못된 시각은 종손자인 이종환에 영향을 줬기 때문에 ‘택리지’에서도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기술이 많이 나오게 됐다는 분석이다.

▲속-150명의 어록으로 엮은 전북인물사

‘전라문화연구’ 20집에 발표한 전북인물사 “노비도 하늘이 보낸 백성인데 내 어찌 함부로 하겠느냐”의 속편.속편 제목은 “막힌 곳은 뚫고 굽은 것은 펴겠다”. 1982년 8월 김상엽(부안출신)고려대 총장이 국무총리 취임사에서 밝힌 말이다.

전북이 배출한 훌륭한 인물 150명의 어록을 전주, 군산 등 도내 14개 지방자치단체 별로 묶었다.

/이병재기자 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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