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대표는 "자신이 필요한 곳, 또 자신이 가야 할 곳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갈 수 있도록 늘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영국의 비평가이자 사회사상가인 존 러스킨(John Ruskin)은 ‘예술과 학문의 가치는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위한 사심 없는 봉사에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예술적 재능을 어렵고 고통 받는 우리 이웃들을 위해 쓰고 있는 한 예술가가 있다.

바로 호남권의 대표적인 마임이스트이자 웃음전도사로 왕성하게 활동중인 달란트연극마을의 최경식 대표(47). 최 대표는 바쁘다. 때론 어린 아이들에게 웃음을 주고자 고아원이나 학교를 찾아가 공연하기도 하고 때론 어르신들을 위한 흥겨운 위문공연을 준비한다.

어제는 고통 받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전하고자 병원에 찾아갔다면 내일은 또 한옥마을의 한 귀퉁이에서 지나가는 여행객이나 나들이 나온 가족관광객을 위한 거리공연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지난 1986년 극단 ‘황토’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에 발을 들인 최 대표가 처음부터 이러한 봉사의 삶을 살아온 것은 아니다.

오히려 1990년대 중반, 10년간 활동하며 온갖 애정을 쏟았던 극단이 자신으로 인해 해체 되어버릴 정도로 독선과 아집으로 가득했고 ‘나 아니면 안되’ 라는 과도한 자만심에 젖어 있었다. 최 대표는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3년간 자숙과 자성을 위해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 그리고 삶의 모든 것이 변했다.

독선 대신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아집이 떠난 자리는 봉사에 대한 일종의 사명감이 자라나기 시작한 것. 최 대표가 마임이스트로서 변모하게 된 시기도 바로 이즈음이다.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마임을 하겠다고 결심하게 된 계기는 1996년 서울에서 열린 마임의 거장 마르셀 마르소의 내한공연을 보게 된 것. 그 공연을 통해 최 대표에게는 언어를 초월해 맨 몸으로 표현되는 모든 것에 대한 감동과 마임을 하고 싶다는 욕구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어 찾아온 또 한번의 기회가 그를 호남권 유일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임이스트로 만들었다.

바로 폴란드 출신의 마임이스트 스테판 니즈알코프스키가 서울에서 10일간의 일정으로 마임 워크숍을 개최한 것. 짧지만 알차게 진행된 열흘간의 워크숍에 참가해 마임가로서 기본기를 닦은 최 대표는 그 해 10월 전북예술회관에서 열린 ‘판토마임 컬렉션’ 공연을 시작으로 마임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그 후 최 대표는 안주하지 않고 모작과 습작을 통해 자신의 정신적 멘토인 마르셀 마르소를 닮고자 노력해왔다. 최 대표는 자신에게 생겨난 마임이스트로서의 자질과 재능을 비슷한 시기에 샘솟은 봉사에 대한 소명(召命)에 이용했다.

아울러 생활이 힘들고 어려운 사람일수록 마임과 같은 문화예술의 공연장을 찾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자신이 직접 어려운 이웃이나 병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들을 찾아가서 웃음과 희망을 전하기 위한 공연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최 대표는 주요 테마로 ‘아낌없이 주는 나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작품을 구상했고 어려운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에게 ‘희망’과 ‘사랑’,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란 메시지와 함께 많은 웃음을 선사해 왔다.

그에게 가장 큰 행복을 선사했던 공연은 말기의 암환자들이 병마와 싸우고 있던 한 전문병원에 찾아가서 했던 위문 공연. 여기서 최 대표는 한 젊은 여자 환자를 만났다. 그녀는 최 대표의 마임공연 내내 참 많이 웃으며 좋아하더니 공연이 끝나자 최 대표에게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내년에 또 와주세요!” 라고 말했다.

말기 암환자와의 1년 후 기약에 다소 의아해했던 최 대표가 약속대로 다시 그 병원을 찾았을 때 그녀는 여전히 희망을 잃지 않고 병마와 싸우고 있었다. 최 대표는 자신의 공연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고 말한 그녀의 모습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내년에 또 올게요” 라고 다시 1년 후를 기약했다.

최 대표는 자신을 통해 희망을 얻었다던 그 환자의 모습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한편 최 대표는 이러한 찾아가는 위문공연 외에도 ‘Warming Together(함께 따뜻해져요)’라는 이름의 소극장 공연을 마련해 어려운 가정을 위한 후원공연도 병행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말 10일 동안 진행된 ‘Warming Together’ 공연에서는 매일 한 가정에 50만원씩 총 열 가정을 후원했다. 이는 한 기업이나 병원, 단체와 연계해 50만원 상당의 티켓을 해당 단체에 전달해 공연을 보게 하고, 공연을 본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직접 기부를 하는 방식으로 진행돼 그 의미를 더했다.

최 대표에게는 최근 두 가지 고민이 있다. 첫 번째는 후계자 양성. 현재 우리나라에는 마임이스트가 30명이 채 안되며 호남지역에서도 자신이 유일하다는 것이 늘 안타까워, 현재 자신의 뒤를 이어 희망과 웃음을 전달할 마임이스트를 키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다른 한가지는 예술가로서의 고민이다.

관객들은 자신의 공연을 보며 웃고 즐거워하지만 오랜 기간 몇몇의 레퍼토리만으로 공연하다 보니 최 대표에게 예술가로서 새로운 레퍼토리를 개발하고자 하는 욕구와 더 나은 공연을 준비하고 싶다는 예술가적 기질이 꿈틀거린 다는 것. 때문에 최 대표는 내년에는 재충전과 새로운 레퍼토리를 구상하기 위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끝으로 자신이 필요한 곳, 또 자신이 가야 할 곳이라면 언제 어디라도 갈 수 있도록 늘 준비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최 대표에게 왜 주로 어린아이들과 나이든 어르신들을 찾아가 공연하느냐고 묻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저는 마임의 소재로 풍선과 비누방울을 자주 이용합니다. 두 소재는 모두 살며시 닿기만 해도 터지는 연약함이 특징이죠. 이처럼 연약한 풍선과 비누방울은 보는 사람이 ‘아름답다’ 혹은 ‘예쁘다’ 라고 바라보며 보호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채 아름다움이 꽃피기 전에 터져버리기 때문이죠. 이는 어린아이와 노인, 우리의 어려운 이웃들도 같습니다.”

/글=김근태기자, 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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