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6일 오전 2시 30분께 동료 최모(48)씨와 함께 익산시 동산동의 한 골목길을 지나던 이모(48)씨는 갑자기 최씨에게 뺨을 얻어맞았다.

이미 얼큰하게 취했다는 생각에 ‘술 한 잔 더 하자’는 최씨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게 화근이었다. 최씨는 이씨의 뺨을 5차례 때린 것도 모자라 주변에 있던 깨진 벽돌을 집어 들어 이씨의 머리를 6차례나 더 내리쳤다.

이씨도 가만히 있지 않고 최씨의 얼굴을 2차례 때렸다. 하지만 이달 초 고발장을 접수하고 수사를 벌인 경찰은 최씨만을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이씨의 행동에 대해서는 ‘정당방위’를 인정한 조치다. 전주덕진경찰서도 최근 직장동료 이모(42)씨와 주먹다짐을 한 박모(54)씨에 대해 입건하지 않기로 했다.

박씨는 지난 2월 25일 낮 12시 20분께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 공사현장에서 작업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이씨의 멱살을 잡고 여러 차례 밀쳐 2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해를 입혔다.

경찰은 그러나 이에 앞서 이씨가 박씨에게 주먹을 휘둘러 5주간의 치료를 필요로 하는 상해를 입힌 점에 주목했다. 이씨가 먼저 주먹을 휘둘렀고, 그로 인한 상해 정도도 더욱 심하다는 정황에 비춰 이씨의 행위를 정당방위로 본 것이다.

경찰이 폭력사건과 관련해 쌍방 모두를 무조건 입건했던 과거 관행을 벗고 이 같이 사건을 처리한 것은 최근 ‘폭력사건 쌍방입건 관행 개선’ 지침이 마련됐기 때문. 12일 전북지방경찰청에 따르면 관련 지침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난 7일 이후 도내에서 폭력사건에 연루된 피해자 총 6명에 대해 ‘정당방위’를 인정하는 불입건 처분이 내려졌다.

개선된 폭력사건 처리지침은 과거 관행으로 인해 전과자가 대량 양산되는 등의 폐해가 발생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그 동안 폭력사건으로 인해 입건된 피해자 대다수는 사건이 검찰에 송치된 이후 기소유예나 무혐의 처분 등의 불기소 처분을 받아 재판에 넘겨지지는 않았지만 전과 기록이 남는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약식으로 기소된 경우에는 벌금형까지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쌍방입건이 관행으로 이어져 온 것은 폭력사건에서 정당방위를 인정할 만한 명확한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느 한 쪽만을 입건할 경우 민원을 야기할 소지도 충분했던 상황. 이에 경찰은 정당방위에 대한 판단 표지로 총 8개 항목을 마련하는 한편 매뉴얼과 QnA 등 세부적인 지침도 일선 경찰서에 전달했다.

경찰 관계자는 “이번 지침이 마련된 것을 계기로 더욱 공정하고 책임 있는 직무 수행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며 “또한 이를 통해 국민적인 요구에 더욱 부응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박효익기자 whic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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