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小木匠 소병진 명장
휴먼스토리/ 小木匠 소병진 명장
  • 김근태
  • 승인 2011.04.14 18: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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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사상가인 괴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가들을 보면 언제나 선임자들의 장점을 이용했다는 것과 바로 이점 때문에 위대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라파엘로 같은 위대한 화가도 자신의 힘만으로 우뚝 솟아 오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모두 고대의 것은 물론 그들 이전에 만들어진 최고의 것, 즉 걸작을 자신의 토양으로 삼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앞선 시대의 장점을 이용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위대한 인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 지역에도 선인들의 걸작을 토대로 이를 복원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인생을 건 한 명장(名匠)이 있다.

왠지 공장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연기들이 어울림직한 팔복동 공단, 그 한 켠에 자리잡은 낡고 작은 홍익가구공예사. 이곳에서 묵묵히 지난 47년의 세월 동안 소목장(小木匠)의 일을 해오며 일제 식민시대 이후 사라졌던 전주장(全州欌)을 복원한 긍재(亘齋) 소병진 홍익가구공예사 대표를 만났다.

한 개그프로에서는 16년 동안 한가지 일만 해오면 달인이라고 칭한다.

그런데 소병진 대표는 소목장의 일을 해온 것이 47년, 전주장 복원을 시작한지는 어느덧 20년이 훌쩍 넘었다.

그래서일까 소 대표는 지난 1992년 대한민국 가구제작 명장 제1호로 지정됐다.

이런 소 대표가 소목장의 일을 시작한 것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를 중퇴한 15살이 되던 해. 어린 소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구 만드는 목공예방에서 일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소 대표는 소목장인으로 한 길을 걸어왔다.

“그 당시만 해도 제가 살던 용진면 일대에는 목공예방이 많았고 가구 만드는 일을 하시는 분들도 많았어요. 조선시대부터 용진하고 봉동에서 만드는 가구가 유명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복원한 전주장도 제가 태어난 용진에서도 많이 만들어졌더군요. 왠지 운명 같았어요” 소 대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나이부터 소목공의 일을 배운 소 대표는 전주에서 10년 만에 실력을 인정받게 되고 한 선배의 권유로 보다 나은 실력을 쌓겠다는 꿈을 품고 서울로 상경한다.

그리고 아시아에서 최고로 인정받던 한 수제가구공장에서 배우면서 일하다 우연히 들르게 된 인사동 골동품상. 소 대표는 운명 같았다던 전주장을 그곳에서 처음 만나게 된다.

“전주장을 보고 놀랐어요. 전주에서 배운 제가 전주장이 있다는 것을 그 때 처음 알았으니까요.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어요.” 그때부터 소 대표는 자신의 인생을 전주장에 걸었다.

인사동을 비롯한 전국의 골동품가게를 돌며 자료를 수집하고 전주장이 있다는 박물관과 개인 소장자들의 소식을 들으면 찾아가 사정을 해가며 자료를 수집했다.

이로도 부족하면 헌 장롱을 해체하면서 기법을 알아내 복원하기 시작했다.

결국 소 대표가 전주장에 인생을 건지 꼬박 20년 만에 조선말 전주와 완주를 중심으로 제작되던 ‘전주장’ 재현과 짜맞추기 전통기법을 완벽하게 복원하는데 성공했다.

소 대표가 이러한 성공을 거두게 된 데에는 아내인 박경심 여사(55)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 했다.

아내인 박 씨는 소 대표에게 “그냥 잘 팔리는 일반가구를 제작해라. 돈벌이가 되는 가구를 제작해라.” 핀잔을 주고 잔소리를 하면서도 묵묵히 일하며 두 아들을 키우고, 가계를 꾸려갔다.

소 대표의 두 아들은 소 대표의 장인정신과 어머니 박경심 씨의 헌신 속에 두 그루의 나무처럼 올곧게 자랐다.

사시사철 변함없는 소나무를 닮아가길 바라며 이름을 지은 큰 아들 소남우 씨(31)는 부모의 뜻대로 올곧게 자라 어느덧 듬직한 경찰공무원이 됐으며, 작은 아들인 소중한 씨(28)는 전주장이 다시는 사장되지 않게 하기 위해 가구디자인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소목장의 일을 배우고 있다.

소 대표가 일하는 작업실에 들어서면 먼저 입구부터 켜켜이 쌓아 말리고 있는 나무들이 먼저 반긴다.

그리고 소 대표의 47년 동안 사용해 손때가 묻어있는 오래된 작업도구들. 어쩌면 소병진 선생이 사사 받은 이해민 선생의 손때가, 혹은 그 이전 명장들의 피와 땀, 그리고 숭고한 얼이 담겨있는 그 작업도구를 들고 작업중인 소 대표의 안경너머로 보이는 고집이 담긴 눈매를 볼 수 있다.

현재 전주장을 일반에 널리 알리고자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보급형 전주장을 연구 중이라는 소 대표. 그에게는 한가지 꿈이 있다.

소 대표가 일반 장에 비해 미세·섬세하며 심오한 기법이 담겨있어 매력이 있다고 말하는 전주장. 이를 사장되지 않도록 자신의 아들인 소중한 씨와 다른 제자들에게 전수하는 것. 끝으로 소 대표에게 온전히 전주장을 전수하는데 얼마나 걸리냐고 질문하자 이러한 대답이 돌아왔다.

“일반가구는 기술을 온전히 전수하는데 5년에서 10년이면 족합니다.

하지만 전주장은 20년이 걸려요. 근데 그거 아십니까? 밖에 말리고 있는 나무들 있잖아요. 가구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나무들은 주로 15년에서 20년 동안 말려야 합니다.

그래서 소목장 세계에서는 스승이 말린 나무들을 제자가 사용하게 되죠. 지금 제가 말리고 있는 나무들도 제 아들이 사용하게 될 겁니다.

제 단 하나의 바램은 20년 후 제가 준비한 목재들로 아들이 전주장을 만들고 저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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