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64년 어느 날, 전국 각 시·도의 RCY(전국청소년적십자) 대표가 전주에 모였다.

이들은 한참을 논의한 후 각자 흩어져 자신들의 불우한 퇴직 스승과 병상에 몸져누운 은사들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65년, RCY는 우리민족의 얼이자 자랑인 ‘한글’을 창제한 위대한 스승 세종대왕 탄생일을 ‘스승의 날’로 제정한다.

하지만 시대가 변해 어느덧 교사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인간의 정신적 인격을 가꾸고 키워주는 스승의 높고 거룩한 은혜를 받들며, 청소년들이 평소의 따뜻한 애정과 깊은 신뢰로써 선생님과 학생의 올바른 인간관계를 회복하기로 한다’던 그 제정 취지는 온데간데 없는 것이 현실. 이러한 시대적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40년의 교원 재직기간, 늘 한결 같은 사랑으로 학생들을 대하고 제자들의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준 공로를 인정받아 오는 스승의 날 국무총리상을 수상하는 ‘참 스승’ 익산 천서초등학교 김재홍 교장(60, 전주시 인후동)을 만났다.

전북 장수에서 태어난 김 교장은 다른 대부분의 다른 교사처럼 교대나 사범대와 같은 정규교육대학을 나오지 못했다.

이는 김 교장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당시 시행되던 예비고사를 통과하고도 대학진학을 포기했기 때문. 하지만 김 교장의 운명은 그의 삶을 교육자의 길, 스승의 길로 안배한 것일까? 그에게 뜻하지 않은 기회가 찾아온다.

지난 1968년부터 1970년 사이, 형편없는 급여와 사회적으로 낮은 대우에 불만을 품은 많은 교사들이 교편을 놓고 이직하는 사례가 적잖게 발생한 것. 당시 교육당국은 교사들의 이탈로 필요한 교사의 정족수를 채우지 못해 임시방편으로 고등학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교원을 선발해 4개월의 단기 교육 과정인 임시교원양성소를 운영해 교원을 충당하게 된다.

현재 한국농어촌공사로 개명한 토지계량공사 부산지사에서 일하던 김 교장은 이에 응시해 동기생 333명 가운데 4등의 우수한 성적으로 교원양성과정을 수료한다.

그리고 1970년 11월, 자신의 모교인 장수초등학교에 첫 부임한 김 교장은 자신의 인생에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인생의 스승, 오윤균 선생을 만나게 된다.

정규 교육대는커녕 일반 대학의 문턱도 밟아보지 못한 이 신출내기 교사에게 당시 교감으로 재직하던 오윤균 선생은 “너의 과거가 어떤지는 모르지만 다 잊고 앞으로 좋은 교사가 되어라. 너는 할 수 있다”는 말로 자신감을 심어준다.

또한 오 선생은 이후 김 교장의 40년 교직 생활의 밑거름이 될 교육자로서의 인성과 교육에 대한 모든 실무를 도맡아 가르친다.

‘교육에 대한 특별한 열정은 없었다’던 김 교장은 이러한 가르침들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사랑으로 품고, 학생들이 뛰어 노는 학교를 아름답게 만들고자 노력하는 교사로 거듭난다.

그로부터 4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김 교장은 29년여의 평교사 생활과 교감, 장학사를 거쳐 어느덧 교장이 됐다.

뒤늦게 대학공부도 시작해 방송통신대 초등교육학과와 우석대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 다니는 등 끊임없는 자기개발 노력도 기울였다.

그리고 지난 2008년 9월 교장으로서는 두 번째 학교인 익산천서초등학교에 부임한다.

익산시 춘포면에 위치한 이 학교는 지난 2000년만 해도 낙후된 시설과 적은 학생수로 인해 통폐합 대상학교로 지정되기도 했던 곳. 그런 천서초등학교 김 교장이 부임한 후 나날이 변화하고 발전함과 동시에 매년 학생수가 늘어나더니 어느덧 시골학교 치고는 많은 91명의 초등학생과 17명의 유치원생 등 총 108명의 어린이가 꿈과 희망을 키워가는 곳으로 변모했다.

오늘도 아침 식사를 마친 김 교장은 여느 날과 다름없이 새벽 5시 30분 집을 나선다.

6시쯤 학교에 도착한 김 교장은 곧장 교장실로 들어가 문 옆 선반에서 호미를 비롯한 각종 조경도구를 꺼내 들고 교정을 휘젓는다.

한참이 지나서야 학생들이 등교하기 시작하면 반가운 인사로 아이들을 맞이한 후, 교장실로 돌아가 본격적인 업무를 시작한다.

틈틈이 남는 시간은 학교 발전을 위한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복도에서 지나치며 인사하는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흐뭇한 미소로 뒤돌아선 김 교장은 시간이 흘러 노을이 질 무렵, 학생들이 모두 돌아가면 교정을 한 바퀴 둘러본 후 퇴근한다.

집에 온 김 교장은 자신의 뒤를 이어 선생님이 돼 장수군 장계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막내 딸 승연(30)씨와 통화하며 교육자 선배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아버지로서의 가르침을 전한다.

교육자로서 이제 정년이 채 3년도 남지 않은 김 교장은 학교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까지 이러한 일상을 반복하리라. 그리고 정년 이후에도 김 교장은 그의 삶과 교육열을 보고 배운 수많은 제자들을 통해 참 교육을 이어갈 것이다.

중국 북송(北宋) 시대의 학자인 사마광(司馬光)은 “경서(經書)를 가르치는 스승은 만나기 쉬우나 사람을 인도하는 스승은 만나기 어렵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많은 스승이 있지만 자신을 올바른 길로 인도한 스승, 존경하는 스승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지난 40년을 제자들을 향한 끊임없는 사랑으로 지내온 김재홍 교장. 오늘도 이른 새벽부터 아이들의 정서와 안전을 위해 끊임없이 학교를 가꾸고, 아이들의 아름다운 꿈도 함께 키우는 김 교장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 마음에 품고 있는 ‘참 스승’의 모습이 아닐까?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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