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지 19개월 만에 얻게 된 시각장애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정치 활동가이자 작가로서 왕성한 활동을 한 헬렌 켈러,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잘 하지 못하는 극한의 장애를 극복하고 시대를 대표하는 우주 물리학자가 된 스티븐 호킹 박사, 두 다리조차 없이 네 개의 손가락만 가지고 태어났지만 끊임없는 연습으로 우리에게 많은 감동을 선사한 ‘네 손가락 피아니스트’ 이희아,

지난해 열린 2010 밴쿠버 장애인동계올림픽에서 은매달을 따내며 감동을 선사한 컬링 국가대표팀, 그리고 전 세계에 감동과 사랑의 ‘허그’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닉 부이치치까지. 이렇듯 세상에는 몸과 마음의 극심한 고통과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고 장애인에게는 꿈과 희망을, 일반인들에게는 감동을 선사하는 다소 ‘특별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도 불의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됐지만, 이를 극복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소중하고 특별한 이웃이 있다. 바로 전북장애인체육회의 손운자 부회장(53). 전북 진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0년 전 혼자 차를 몰고 집에 가는 길에 음주운전자의 차량에 사고를 당했다.

이 사고로 목을 크게 다친 손 부회장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평범한 주부이자 두 아들을 둔 어머니로 유쾌하게 살아가던 그녀에게 이 사고는 망가진 몸과 함께 절망과 좌절, 그리고 가해자와 세상에 대한 증오를 안겨줬다.

“너무 억울했어요. 왜 내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이런 고통을 겪어야 하는지 세상이 다 원망스러웠죠. 병원 침대에 누워 눈물로 악몽 같은 시간을 견디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가해자를 욕하며 ‘찾아가 죽여버려야지’ 라는 생각밖에 나질 않았어요.” 하지만 이런 증오는 잠시, 손 부회장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생활할 정도의 힘은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물리치료와 재활치료를 시작했다.

아내의 사고로 병수발을 하던 남편과 당시 사춘기 시절을 보내던 두 아들을 생각해 이를 악물고 견디고 또 견뎠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했던가? 다행이 몸을 어느 정도 회복한 그녀에게 찬란한 2막의 삶을 선사할 특별한 계기가 찾아온다.

서울에서 치료를 받던 그녀가 담당의사와 함께 인천에서 열린 장애인 국제 테니스 대회를 관람하러 간 것. 자신처럼 휠체어를 탄 외국선수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경기를 하는 모습에 그녀는 담당 의사에게 “선생님, 저도 운동 시작하면 저렇게 될 수 있어요?”라고 묻는다.

“네!” 라는 대답에 용기를 얻은 그녀는 “저도 운동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어요?”라고 재차 묻는다.


“물론이죠. 하지만 많이 힘들고 고통스러울 겁니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바꿔줄 장애인테니스와 만났다.

그리고 점차 삶의 활기도 되찾았다. 이렇게 테니스를 시작한 그녀였지만 2년여의 레슨기간 동안 역시 단 하루도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

힘든 레슨을 견디며 참고 또 참았지만 혼자가 되는 시간에는 언제나 극심한 통증과 왠지 모를 외로움에 눈물이 났단다.

그냥 다른 장애인들처럼 살걸 왜 이렇게 힘들게 운동을 해야 하는 거냐며 포기할까도 생각했었단다. 그러나 그때마다 그녀를 붙잡은 것은 국가대표가 돼야겠다는 목표의식이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사고 가해자에 대한 원망이 목표를 성취하고야 말겠다는 오기로 뒤바뀐 것. 그녀는 휠체어가 넘어지고 땅에 떨어져 뒹굴어도 고통스러운 몸을 스스로 이끌고 다시 휠체어에 앉아 라켓을 휘둘렀다.

어느 누구도 연습시간에는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그녀의 몸은 배변기관도 망가져 호스를 통해 변을 빼내야 했었지만 연습시간에는 이 조차도 할 수 없어 소변과 대변을 몸에 묻힌 채 연습 할 때도 많았다.

그녀는 그러한 수치심도 참고 이겨내며 묵묵히 연습해 어느덧 자신이 바라던 장애인테니스 국가대표가 됐다.

자신에게 장애인테니스를 각인시켜줬던 그 외국인 선수처럼 국가대표로서 이탈리아와 호주, 동남아 등 전 세계를 누비며 국제대회에 참가해 수 차례 입상했으며 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또 얼마 전 전북에서 열린 전국체전에서는 성회봉송의 최종주자로 나서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국가대표생활을 마친 그녀는 지난 2005년, 타 지역에 비해 열악한 전북지역 장애인 생활체육의 활성화를 위해 몇몇 기관과 합심해 전북장애인체육회를 결성했다. 어느덧 지난날 흘렸던 많은 눈물이 환한 웃음으로 뒤바뀐 그녀는 ‘눈부신 미소’로 자신이 몸담고 있는 체육회를 소개한다.

“장애를 갖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장애인이라는 창피함과 사회 일부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집에만 있으려고 해요. 전북장애인체육회는 이러한 재가장애인들을 밖으로 나오게 만들어 함께 운동해 건강한 육체와 함께 마음의 건강을 되찾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스티븐 호킹은 “장애인이란 자신이 장애인이라고 생각할 때에만 장애인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장애인이 아니다.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원망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마음의 장애인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마음의 장애인이야말로 진짜 장애인이다”라고 말했다.

마음이 건강한 그녀는 오늘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활력소를 배달하기 위해 매일 자신이 살고 있는 진안과 전주를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힘들고 통증을 느끼면서도 오늘을 살아간다는 것이 참 행복해요”라고 말하며 휠체어를 끌고 힘차게 전진한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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