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최근 각종 매스컴을 통해 여러 종교인들이 성직자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채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이는 대부분의 종교가 너나 할 것 없이 외형적 성장에만 눈을 돌리는 추세 속에서 해당 종교의 본질인 ‘사랑’과 ‘자비’, 그리고 ‘나눔’의 가르침을 점차 망각해가는 까닭일까?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사실은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잘못된 길로 향하는 종교인보다는 자신보다 주위의 어려운 이웃을 먼저 생각하고 나눔을 몸소 실천하는 종교인들이 더 많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지역에도 지난 17년 이상의 기나긴 시간 동안 형편이 어려운 수백 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의 치료비를 자비를 털어서까지 지원해오며 희망을 선사해온 익산만남의교회 이해석 목사(56)와 같은 참 종교인이 있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이 목사는 대학에서 작곡을 전공한 후 음악교사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다 불연히 ‘이렇게 사는 것은 아니다.

이왕 사회를 살아가는 것, 남을 위한 길을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그 길로 그는 가족들의 반대를 뒤로하고 하던 일을 그만두게 된다.

그리고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 입학했다.

“지금이야 웃으면서 얘기하지, 당시에는 반대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죠. 특히 아버님의 반대가 심하셨는데, 멀쩡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왜 사서 고생을 하러 성직자가 되려 하냐면서 완강하셨어요. 결국 당시에 집에서 잠시 쫓겨나기까지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호적에서 파이지 않은 것만해도 다행이지 싶어요.” 신학대학을 졸업한 이 목사는 남원의 지리산자락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도심에서 도서벽지로 멀어져 가면 갈수록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기 마련. 이곳에서 그는 병마에 신음하고 아파하는 자들을 자주 목격하게 된다.

이 목사는 이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지역 어르신들을 위한 의료환경개선과 지역재가복지사업에 중점을 두고 목회를 하던 중 우연히 한 여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희귀난치성질환자 돕기에 나서게 된다.

그 여학생이 당시 만성 재생불량 백혈병을 앓고 있었던 것. “백혈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골수 이식까지 1억2~3천 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치료비가 들어요. 그 당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파하는 그 학생을 위해 헌혈증서를 모아서 가져다 주는 것밖에 없었죠” 이 목사는 당시 경제적 형편이 좋지 않았지만 이렇게 모은 헌혈증서 120장과 함께 자비를 털어 50만원의 치료비를 지원한다.

또 부족한 치료비를 기부해줄 후원자를 찾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그는 ‘희귀난치성질환’을 주제로 세상과 부딪히기 시작했다.

희귀난치성질환자에 대한 열악한 정부정책과 불우한 환경의 환자들에게도 획일적으로 부가되는 병원의 특진요금제 개선 등을 위해 쓴 목소리를 냈다.

환자들의 치료비 지원을 위해 국내 굴지의 사업가와 고위관료 등 각계각층을 찾아가 사정해 후원자로 만들기도 했다.

또 희귀난치성질환자 후원회를 결성하고 환자 발굴과 체계적인 지원을 위해 지난 2003년에는 비영리법인인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한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귀중한 생명을 살리는 데는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한 법이죠. 부딪혀서 안되면 또 부딪혔죠. 성경에서도 ‘두려워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고 가르치잖아요. 또 예수님께서는 빌립보서 4장 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말씀하시잖아요. 이렇게 포기하지 않고 싸우고 기도하면 사람들 마음의 문이 열리고,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을 한번쯤 돌아볼 거라 생각했어요.” 환자 섬김을 시작한지 17년이 흐른 지금 이 목사에게는 다양한 별명이 생겼다.

이 목사는 자신의 끊임없는 괴롭힘에 이제 환자들의 후원자가 되어버린 국내 20대 그룹 총수들과 진료비의 40%를 차지하는 특진요금을 자주 깎이는 병원장들에게는 ‘깡패목사’로, 형편이 어려운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협력하다 보니 어느덧 희귀난치성질환자 지원센터의 직원화 되어버린 도내 14개 시군 사회복지 공무원들에게는 ‘사장님’으로, 이 목사를 통해 희망을 찾게 된 500여명의 희귀난치성질환자들에게는 ‘아버지’로, 아픈 자식을 그저 바라보고 애만 동동 구르다 환하게 웃게 된 아이를 보는 환자 가족들에게는 ‘해결사’로 불리며 즐겁게 일하고 있다.

이 목사는 현재 성도가 30여명 밖에 되지 않는 익산만남의교회를 담임하면서 교회재정의 60%를 환자 치료비 지원을 위해 사용하고 있다.

이 목사는 이밖에 겨울철에는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연탄 배달을 하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우리 이웃에 희망과 사랑, 그리고 따스함을 전하고 있다.

지난해 이 목사는 12년 동안 희귀난치성질환자를 향한 69만여㎞의 거리를 함께 달려온 승합차를 더 이상 고칠 수 없어 폐차시켰다.

이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한 사업가가 기증한 새 자동차로 지난 14개월 동안 6만5천여㎞ 거리를 더 달려왔다.

그리고 이 목사는 앞으로 지난날 희귀난치성질환자를 걸어온 만큼의 거리를 더 나아갈 것 같다.

이 목사는 끝으로 “제가 좋은 일 하고 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제 스스로의 방법으로 즐겁게 놀고 있는 거죠.”라고 말하며 환한 미소를 짓는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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