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지나가는 말로 ‘사진은 왜 하는가, 돈도 안 되는데’ 라고 하지만 지금까지 돈을 위한 사진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내 인생에 오직 하나의 행운이 있었다면, 이는 아마 내가 독학으로 사진에 미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겪어 왔고 아직도 나를 조롱하는 모든 불행에 대해 신에게 감사하고 싶은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나는 마치 사진만이 나를 구원해 줄 수 있다고 여겼으며, 사진이 곧 나의 삶이고, 삶이 곧 사진이 되어 왔다. 솔직히 사진은 나에게는 종교 이상이다. 내가 일생 동안 찍어온 사진의 역사는 바로 나 자신의 삶의 느낌을 정직하게 전하려 한 것이다.”

이 말은 일본에서 독학으로 사진을 익힌 1세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자 현재 80대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20㎏이나 되는 카메라 장비를 들쳐 매고 현장을 왕성하게 누비고 있는 최민식 선생(86. 부산)의 자기고백의 일부이다.

전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는 오준규 씨(42)는 이러한 최민식 선생의 정신을 이어받아 현재 자신의 사진기 프레임에 희망과 사랑, 그리고 아름다운 세상을 담는 젊은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이기도 하다.

전북지역 유일의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인 오 씨는 지난해 3월 한국사진작가협회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후원으로 역량 있는 사진작가 발굴 및 육성을 위해 진행한 ‘제4회 청년작가 10인’에 선정돼 수상했다.

또 천안함 침몰 합동 안장식 추모 사진집인 ‘현충원이 울던 그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교보문고 명품 소장도서로 선정된 김대중, 노무현 前대통령 서거 추모 사진집 ‘추모’ 등을 통해 이름을 알리기도 한 인물. 오 씨는 지난 봄을 무척이나 바쁘게 보냈다.

3개월 동안 누른 셔터의 횟수만 따져도 1만 4천여 번. 이는 그가 전북도청에서 1천50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아 장애인가족사진 지원 사업인 ‘행복한 순간으로의 초대’를 진행한 까닭이다.

“3개월 동안 전북지역 14개 시·군을 돌며 200여 장애인 가정을 대상으로 가족사진을 찍었어요. 거의 모든 장애 가정이 그 흔한 가족사진 한 장 갖지 못해오다 이번 일을 계기로 첫 번째 가족사진을 갖게 된 거죠.” 장애인 가정이 가족사진을 찍는 다는 것은 사실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들은 거동이 불편해 직접 사진을 찍으러 찾아가기 어렵거나 정신지체장애로 인해 환한 얼굴을 한 가족사진을 찍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주변의 일부 혐오 섞인 시선도 사진 찍는 것을 꺼려하게 된 또 하나의 이유. 그는 이러한 것들에 착안해 재가장애인들을 직접 찾아 다니며 가족사진을 찍겠다는 계획을 세운다. 무수한 노력 끝에 도의 지원도 얻어내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지난 3개월 동안 그는 매주 주말, 가족과의 휴식을 포기한 채 14개 시·군을 돌며 사진기에 무수한 표정들을 담았다. 장애인가족에게 아름다운 가족사진을 선사하기 위해 일반 사진보다 열 배, 스무 배 더 많은 셔터를 누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그는 자신의 삶의 일부인 사진기 프레임에 우리 이웃들의 행복한 얼굴을 담으며 힘들지만 즐거운 3개월여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의 이어 젊은 시절의 고독을 고백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데 이어 그 후 차례로 아버지와 새어머니를 잃어 짙은 고독과 외로움을 경험해야 했다고. 경제 형편도 좋지 않아 자신이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다는 사진에 대해서도 정식교육을 받지 못하고 오로지 독학으로 습득해야 했단다.

지나온 날의 고독과 외로움, 사람에 대한 그리움은 그에게 ‘사람’과 ‘삶’에 대한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눈과 사진기에 아름다운 경관이나 그림 같은 풍경보다는 사람들의 울고 웃고 고민하고 싸우고 힘겨워하고 행복해하고 다투는 삶의 모습을 담기 시작했다.

또 자신의 정신적 멘토인 최민식 선생을 쫓아 전문 다큐멘터리 사진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보기에 좋은 풍경사진은 선물용이나 장식용으로 팔리기도 하지만 삶의 어둡고 더럽고 슬프고 괴로운 부분까지도 담아야 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은 살 이유가 없죠. 남들은 ‘왜 이렇게 돈도 안되고 팔리지도 않는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느냐’고 걱정하기도 하지만 저는 사람들의 삶을 사진에 담아 희망을 전하고 싶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이렇게 그는 그의 사진들 속에 연탄을 짊어지고 흐뭇하게 걸어가는 우리네 아버지, 나무를 해 지게에 짊어진 고단하지만 행복이 묻어있는 할아버지, 다양한 생각과 표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스쳐가는 사람들, 지나온 삶이 고스란히 담긴 우리 이웃의 뒷모습 등을 담아 왔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오준규. 그는 자신의 작품들 속에 ‘사람’을 담아오며 ‘사람이 있어 세상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전해온 이 희망찬 메시지는 그가 지난 어느 날엔가 썼다는 그의 작업노트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지금도 잘 모른다. 물론 처음엔 더 알지 못했다.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지구상에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이미 너무 나만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타인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이제야 조금씩 귀를 열어 본다. 타인은 나에게 타인이 아닌 사랑의 대상으로 한 뼘 더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 오준규의 작업노트 中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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