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린 백성 중에서 장정으로서 부역을 원하는 자가 있거든 일일이 통지하여 부역하게 하면, 감영에서 세끼 요미(料米)를 지급하고 얼마쯤의 품삯을 줄 생각이니 이는 굶주리는 백성을 구제하여 살리는 방법이 될 것이다.’(1734년 2월 28일. 전라감사가 구례를 비롯해 8개 군현에 내린 글) ‘전정(田政)을 농간한 자 또한 마땅히 처벌하되 충분히 참작하여 한 차례 형장을 가하고 신문한 자는 벌로써 돌 15덩이 혹은 20덩이를 옮기게 한 것은…(중략)’성단용(城旦舂-새벽에 일어나서 성을 쌓는 중국 진-한시대 형벌)의 옛 법을 따르는 것이다‘(1734년 3월 29일. 전라감사가 각 군현에 내린 글 ) ‘전주역사박물관(관장 이동희)이 1734년(영조 10년)에 개축된 전주성의 축성공사 내역이 상세히 기록된 ‘전주부성 축성록’을 펴냈다.

이 책은 지난 2003년 유재춘 강원대 교수가 발표한 ‘축성계초’를 이희권 전북대 명예교수와 이동희 전주역사박물관 관장이 공동으로 국역한 것으로 전주성에 대한 궁금증을 일반인들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주부성 축성록’은 당시 축성공사 내역 전모를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축된 전주성의 규모와 형태를 구체적으로 담고 있어서 일제에 의해 사라진 전주성을 역사적으로 복원할 수있는 자료. 또한 영조대 개축되기 이전의 전주 옛 성에 대해서도 기록해 놓아서, 옛 성의 규모와 형태, 나아가 전주성의 변천사를 연구하는 데도 귀한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보인다.

‘전주부성 축성록’에 따르면 축성공사에 쌀 4천섬, 돈 1천700냥, 청태목(생나무로 만든 연장자루에 쓰는 나무) 2천128다발, 마른 칡덩굴 567동(同), 품삯 4천379냥 3전이 소요됐다.

또한 매탄(숯만들기), 돌 운반, 철거, 축성 등에 동원된 인력이 연인원 17만 334명으로 기록돼 있어 여기에 석수, 목수, 기와장 등 장인들을 포함하면 공사 연인원이 훨씬 더 많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동희 관장은 “이 책에는 전주성이란 건축물 분야 뿐 아니라 일꾼들의 품삯과 생활이 어려운 백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죄인들에게 일을 시키고 면죄해 주는 등 당시 생활상이 잘 드러나 있어 18세기 사회경제상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병재기자 kanad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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