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토리/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
휴먼 스토리/이치백 전북향토문화연구회 회장
  • 김근태
  • 승인 2011.09.01 20: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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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길가의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 바람에 흩날리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에도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그것들은 오랜 시간을 지내오며 그 안에 각각 우리민족의 역사를 담아왔기 때문이죠.” 1977년, 당시 전북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하던 故 이강오 교수가 몇몇의 관련 학자와 전공자들과 함께 전북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연구하고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기 위해 창립한 전북향토문화연구회. 지난 2003년 회장에 취임 후 그간 전북지역의 역사와 주목 받지 못하던 사적과 문화재, 역사인물 등을 발굴하는데 힘써온 이치백 씨(81)는 최근 전라북도교육청과 함께 우리 고장의 비지정 사적과 문화재 보호 및 정화운동에 한창이다.

사단법인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회장을 겸하고 있는 이 회장은 현재 여든이 넘은 나이가 무색하리만치 오늘도 여전히 우리 조상들의 얼이 스며있는 문화재 보호를 위해 직접 현장을 누비고 있다.

이는 이 회장이 향토문화연구에 몰입하기에 앞선 50년, 그의 삶 대부분을 언론계에 종사하며 해방 이후, 전북지역을 대표하는 언론인으로서 지역의 근·현대사를 누구보다 먼저 발로 뛰며 알아내고 도민에게 전하던 습관이 아직 몸에서 가시지 않았기 때문일 것. 이 회장에게 그의 삶을 관통하게 될 신문과 역사에의 관심은 그가 전주에 이사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생겨났다.

“정읍에서 태어나 전주에서 소학교, 오늘날로 말하면 초등학교부터 다니기 시작했지. 6학년 때 담임선생님께서 내게 ‘너는 커서 지리나 역사를 공부하던지 신문기자가 되는 것이 네 적성에 맞을 겉 같다’고 말씀하셨어.” 스승의 눈썰미가 틀리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스승의 말이 제가의 목표가 되었던 걸까? 초등학교에서 어린이신문을 직접 만들기도 했었다던 이 회장은 10년이 지난 20대 초반, 서울에서 일반 신문사의 기자로 언론계에 몸을 담았다.

그리고 그는 이후 종군기자와 통신사 등을 거쳐 전북지역에 와 지역 신문사를 두루 섭렵하며 취재기자와 편집기자, 주재기자, 유신치하 1도1사 시절의 편집국장, 주필, 이사, 대표이사까지 역임하는 등 50년간 전북지역 언론과 지역사, 지역 현안의 산 증인이 되어왔다.

그의 말에 따르면 “비교적 전문성이 요구되는 사진부장과 조사부장, 교정부장을 제외한 신문사에 존재하는 모든 부서와 직책을 섭렵했다”니 이만하면 지역언론계의 인간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 회장은 또 우리나라 언론계를 대표하는 조직인 한국기자협회의 발기인으로서 감사를 맡았으며, 전북지회의 초대 지회장, 중견 언론인들의 언론연구 단체인 관훈클럽 감사를 역임하는 등 언론의 발전과 지역언론의 올바른 가치관 정립에 힘써왔다.

이 회장은 ‘역사를 공부해보라’던 스승의 두 번째 권유를 그 말을 들은 지 꼬박 60년이 흐른 후에 실현시킨다.

늘 관심을 두긴 했지만 ‘언론’에 밀려 두 번째를 차지할 수 밖에 없었던 역사와 향토문화 연구를 은퇴 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된 것. 특히 이 회장은 지난 2003년에 ‘향토문화연구가가 아닌 언론인으로 평생을 걸어온 것에 대한 부담’을 짊어지고 ‘그래도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는 괜찮은 기회’라는 생각에 전북향토문화연구회의 회장에 취임했으며, 2008년부터는 임기 4년의 한국향토사연구전국협의회 회장을 역임하며 향토사에 대한 그의 시야를 전국적으로 확대했다.

기자로서 발로 뛴 과거 50년의 시간과 그저 스치듯 지나갈 법도 한 작은 시골마을의 소소한 특징과 풀잎 하나까지도 기억하는 비상한 기억력, 지휘고하와 남녀노소를 불문한 그가 교류해온 모든 인간관계는 어쩌면 향토문화 연구에 제법 잘 어울리며, 그가 추진해온 많은 사업들이 성취되는데 도움이 되었을 법도 하다.

그는 이렇게 지난 10년을 향토사 연구로 보내오는 동안에도 협회의 월간 회보인 ‘전북문화’를 발간하고, 몇몇 지역신문에 기획기사를 연재하거나 칼럼을 기고하는 등 사실상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60년을 언론인으로서 살아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그에게 다소 무례해 보일 수 있으나 꼭 하고 싶은 질문이 있었다.

바로 그가 평생을 몸담아온 ‘언론’에 대한 정의. 그는 ‘알면서 왜 묻나’ 라며 한 차례 답변을 미루다 ‘언론과 인생의 대선배로서 후배에게 조언한다 생각하고 말해 달라’는 철없는 부탁에 인자한 미소로 말했다.

“언론은 발로 뛰며 바르게 봐야 하지, 그래야 올바른 비판이 나오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진실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 경험하는 모든 것에 대해 건성건성 대하면 안되고 항상 진지한 태도를 보여야 해. 언론을 떠난 후에 일부 언론과 몇몇 기자들을 보면서 ‘나도 저랬던가?’하며 돌아볼 때가 종종 있어. 난 극단적 지역주의자는 아니지만 지역이 발전해야 나라가 발전한다고 생각하거든? 언론이 바른 소리를 내야 지역이 발전하고 나라가 발전하지. 나야 이제 인생을 접어가는 시기니 지역발전을 위해 죽을 때까지 향토사 연구나 하겠지만.”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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