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 봉사를 오랫동안 지속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결코 어렵지 않은 단 한번의 봉사조차 스스로 ‘어렵다’고 단정을 지어버리고, 자원봉사에 앞장서는 사람들을 보며 경외의 시선만을 보낸다.

지난달 25일 한국소리문화의전당 모악당에서 진행된 제31회 도민의 날 행사에서 제16회 전북인대상의 ‘효열·봉사 대상’을 수상한 ‘행복한 가게’의 김남규 회장(68)에게 ‘봉사’란 쉬움과 어려움의 대상이 아닌 ‘재미있게 시작했고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일’이다.

김 회장은 이러한 즐거운 봉사활동을 시작한지 올해로 꼬박 30주년이 됐다.

전주시 새마을부녀회에서 11년, 여성자원활동센터에서 11년, 그리고 지난 2004년 재활용품과 기증물품을 판매해 그 수익으로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행복한 가게’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8년이 됐다.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남편의 부임지를 따라 도내 이곳 저곳을 전전하던 김 회장이 전주에 장착한 것은 30대 중반이 됐을 무렵. “진안에 살았었는데 전주에 나오기 전에 집이라도 장만해야겠다 싶어 인삼농사를 지었어요. 그런데 완전히 실패했죠. 인삼이 몽땅 썩어버려서 농사를 정리하고 전주로 나왔는데 충격으로 한동안 몸이 안 좋았어요. 전주에 나오니 마땅히 할 일도 없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우울증과 같은 증세였던 것 같아요. 5년 동안 병원을 전전하면서 ‘공짜로 일해도 되니 출근만이라도 하고 싶다’는 싶은 심정이 들었죠.” 김 회장이 39세가 되던 지난 1981년, 그녀는 한 친구의 권유로 덕진동 새마을부녀회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한 봉사는 그녀의 삶 자제가 되어버렸다.

봉사를 시작하면서 힘겨웠던 그녀의 몸은 건강을 되찾았고, 우울함이 찾아 들었던 생각과 마음은 긍정적인 것으로 변해갔다.

40대 초반에는 덕진동 새마을부녀회장이 되면서 지금은 상식적이지만 당시만해도 획기적이었던 독거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세대에 김치배달도 시작했다.

48세가 되던 지난 1990년에는 전주시 새마을부녀회장이 되면서 활동의 폭을 높였다.

임기가 끝난 후부터는 전주시 여성자원활동센터로 자리를 옮겨 활동하며 관공서 민원실 과 병원봉사를 시작으로 환경정비, 보육원 아동 지원, 독거어르신 방문, 소외이웃과의 밑반찬 나눔, 사랑의 김장김치 전달 등 다양한 활동을 이끌어왔다.

‘인생은 60부터’라고 했던가? 그녀는 60세가 되던 지난 2004년, 좀 더 나은 방법으로 봉사를 하고 싶다는 오랜 고심 끝에 ‘행복한 가게’의 문을 열었다.

이듬해부터는 추운 겨울을 나는 어려운 이웃들에게 사랑의 연탄을 전하는 ‘사랑탄 은행’도 시작해 어느덧 전주에만 다섯 곳이 생겼다.

‘행복한 가게’는 ‘아름다운 가게’와 같이 수거된 재활용품과 기증된 물품들을 판매해 수익금 전액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하는 봉사단체로, 직원 전원이 차비 한푼 받지 않는 100%순수 봉사자들이다.

다른 봉사자들이 일주일에 하루를 선택해 봉사하는 것과는 매일같이 출근해 진두 지휘하는 김 회장조차 행복한 가게에서 차비 한푼 받아가지 않는다.

“이렇게 봉사할 수 있었던 것은 가훈이 돼버린 ‘모든 것은 마음먹은 것에 달려있다’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의 힘과 무엇보다 가족의 도움이 없으면 불가능했죠. 봉사는 웃으면서 해야 하는 것인데 집에서 남편이 찡그린다거나 자녀들이 말썽을 피우면 웃질 못하니 어떻게 봉사를 하겠어요. 다행히 남편은 저를 언제나 믿어줬고, 도움이 필요하며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어요. 아들 셋도 모두 과외는커녕 학원 한번 못 보냈는데 공부도 곧 잘하고 바르게 자라줘서 마음 편히 봉사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30년간 안 해본 봉사가 없다는 ‘봉사회장’ 김 회장, 그러나 그녀는 집이 그다지 넉넉한 편이 아니라 돈으로 하는 봉사는 한적이 없단다.

모든 봉사는 몸과 아이디어를 이용한 봉사였으며, 여전히 그러한 봉사라면 몸이 부서져라 할 수 있단다.

전국에서 제일가는 봉사단을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꿈이라는 그녀는 허락되는 날까지는 봉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하지만 봉사활동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남들 눈에 혹여 초라하게 보여지는 때가 오면 그 때는 그만 두겠단다.

김 회장의 말에 따르면 봉사라는 것은 그것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힘을 얻어야 하는데 초라한 자신의 모습이 비쳐진다면 봉사의 의미가 퇴색된다는 것. 그래서 그녀는 일주일 내내 웃으며 봉사한다.

‘행복한 가게’의 한 켠에는 ‘월요일에는 월례 웃고, 화요일에는 화사하게 웃고, 수요일에는 수시로 웃고, 목요일에는 목이 터져라 웃고, 금요일에는 금방 웃고 또 웃고, 토요일에는 토끼처럼 귀엽게 웃고, 일요일에는 일평생 웃으며 살자’는 문구가 그녀의 모습을 묘사한 듯 붙어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안타까운 점은 많은 주부들이 봉사를 한다고 하면, 일부에서는 시쳇말로 ‘여편네들이 할 일이 없어 모여서 노닥거린다’며 좋지 않은 시선을 보낼 때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때는 가슴이 아프죠. 다른 봉사단체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행복한 가게’는 봉사하는 여성들이 정보를 교환하고 이웃에 사랑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오늘도 저는 이 곳의 여러 봉사자들과 함께 봉사를 하며 삶의 위안을 얻고, 끊임없이 자기발전과 자아실현을 꿈꾸고 있습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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