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스토리/김선기 전주호남교회 원로목사
휴먼 스토리/김선기 전주호남교회 원로목사
  • 김근태
  • 승인 2011.12.15 2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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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한 사람, 34년 넘치는 사랑받고 은퇴하니 행복"

“목회자는 ‘주님께서 날 부르셨다’는 소명이 없으면 인생의 길에서 결코 한걸음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저는 늦게나마 그 부름을 받아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사신 백성들을 섬겨온 것뿐이에요.”

자신보다는 남을 더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랑과 모두를 향한 헌신, 끊임없는 봉사와 섬김을 실천해온 전주호남교회 김선기 목사(73)는 교회성도들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다. 또한 동역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좋은 귀감이 돼왔다.

늘 인자한 미소와 겸손한 태도, 청빈한 생활로 그를 아는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아온 김 목사가 지난 11일, 33년 7개월의 목회생활을 뒤로하고 은퇴했다.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세에 목회자의 길로 들어선 후, 전도사로서 호남교회를 개척해 호남교회를 섬기다 호남교회에서 은퇴한 김 목사는 “너무도 부족함이 많은 사람이 저보다 훨씬 훌륭한 분들의 분에 넘치는 사랑과 존경을 받아왔고, 이렇게 아름답게 은퇴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복합니다”라고 말한다.

성도들의 사랑을 받는 목사이자 선후배 및 동료 목사의 존경을 받아온 그가 처음부터 목사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다.

김제시 백구면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 단 한번도 출석해보지 못했다. 성장해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하고 국어교사가 된 후에도, 그에게 교회는 그저 주일이 되면 예배를 드리기 위해 출석하는 곳에 지나지 않았단다.

“젊은 시절의 저는 문학의 길을 가고 싶었어요. 문학가로서 순수하게 글을 쓰고 싶었죠. 하지만 그 당시는 순수문학을 할 수 있는 시대적 여건이 아니었죠. 세상이 어둡고, 사상과 이념이 자주 대립해 글을 쓰면 이데올로기가 그 속에 담길 수 밖에 없었어요.”

순수문학에 대한 이상과 열정, 그리고 현실 사이의 괴리감에 빠져 고민과 좌절하던 그는 30대 중반이 지나서야 앞서 말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1978년 2월, 마흔살의 나이와 전도사의 신분으로 18명의 성도와 함께 전주시 태평동 2층 건물을 임대해 호남교회를 개척했다.

“주일학교에 다녀본 적도 없고 부교역자로서의 경험도 안 해본 제가 교회를 이끌어간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죠. 그때의 절 흔들리지 않게 지탱해준 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날 부르셨다는 소명의식과 기도, 그리고 끊임없는 긴장감이었어요. 개척 후 일년 동안은 긴장감 때문에 잠이 들 때조차 넥타이를 단 한번도 풀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이후 목사안수를 받은 김 목사는 33년 7개월 동안을 성경말씀에 따른 삶의 자세와 쉬지 않은 기도로 목회해왔다. 든든한 버팀목이 된 김 목사의 헌신아래 교회와 성도들도 점차 부흥하고 성장해갔다. 때론 아픔도 겪었다.

“금암동에 있을 때 교회가 8~900명이 출석하는 중형교회로 부흥했었습니다. 그때 현재 위치로 교회이전을 추진했는데, 교회 중진이셨던 장로 한 분이 큰 실수를 하셨어요. 문제를 해결해야겠는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뿐이었어요. 매일 자정이 되면 당시만해도 잡초 우거진 현재 교회자리에 나와 두 시간씩 기도했죠. 비가오면 비를 맞고, 눈이오면 눈을 맞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교회에 아픔이 절 기도하게 만들었고, 그때의 기도가 나로 인해 처음으로 하나님의 숨소리를 듣게 한 것 같아요.”

호남교회는 이런 아픔과 함께 지난 1997년 현재 위치로 이전한다. 교회이전과 함께 출석성도의 수도 10분의 1수준인 8~90명으로 줄었다. 하지만 김 목사는 ‘그 성도들은 교회를 떠난 것이 아니라 다른 교회로 파송됐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목회에 전념했다. 서신동 지역이 발전하면서 출석 성도의 수가 늘어 어느덧 2천명 이상이 영혼의 쉼을 얻는 교회가 됐다.

“교회가 부흥하고 교회 안에 사랑과 평화가 가득한 것은 먼저 하나님을 만나고, 훌륭한 성도님들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호남교회는 오직 주님과 성도들의 몫이지 제 몫은 아닙니다. 저 같은 돌팔이 목사를 하나님께서 호남교회 담임목사로 34년 동안 사용하셨다는 것, 그것이 제가 덤으로 얻은 영광입니다. 이제는 그 영광 또한 제 것이 아니라, 현재 담임목사인 이용범 목사가 누려야 할 축복입니다.”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주변의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도 결코 놓지 않았다. 김 목사는 전주생명의전화와 자살예방센터,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등을 오랫동안 섬기며 갈 곳을 잃은 영혼들, 병든 이웃들과도 아픔을 함께해왔다.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의 영혼을 문학으로 비빈 후 목회자의 길을 묵묵히 걸어왔다. 이제 그는 남은 여생을 문학을 통해 자신이 만났던 하나님을 나타내고, 자신이 받은 넘치는 사랑과 축복을 자신이 알았던 모두와 나눌 계획이다.

“이제는 젊은 시절 못다 이룬 꿈인 문학의 길을 가보려 합니다. 하지만 비록 강단은 떠났을지라도 교회와 성도들을 향한 사랑은 변함이 없겠지요. 하나님께서 절 부르시고 사용해주셔서 행복한 목회를 할 수 있었고, 성도들의 무한한 사랑 속에 감사히 은퇴할 수 있었으니 앞으로는 하나님과 성도 하나하나의 이름을 기억하며 많은 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싶습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김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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