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최진철 전 축구 국가대표
휴먼스토리/최진철 전 축구 국가대표
  • 김근태
  • 승인 2012.01.26 2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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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 축구팀 중 가장 열성적인 응원을 자랑하는 리버풀FC의 서포터즈 ‘더 콥(The Kop)’. 현재 리버풀FC에는 더 콥이 너무도 사랑하는 두 명의 프랜차이즈 스타가 있다.

바로 스티븐 제라드와 제이미 캐러거. 그 중 제라드가 전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선수라면, 캐러거는 ‘더 콥’과 리버풀 현지팬들의 지지를 제라드 이상으로 받고 있는 프랜차이즈 스타이다.

지난 1994년 전북 다이노스라는 이름으로 창단돼 지난해에는 K리그와 AFC챔피언스리그의 우승과 준우승을 각각 거머쥐며 K리그의 신흥 명문으로 자리잡은 전북현대에서 캐러거와 같은 프랜차이즈를 꼽으라면 너나할것없이 ‘최진철’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된다.

지난 1996년 전북에 입단해 2007년 선수생활을 마감하기까지 ‘전북의 방패’로 불리며 오직 한 팀에서만 뛴 후, 신생구단 강원FC의 코치를 거쳐 이제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 산하 유소년 전담코치가 된 전 국가대표 수비수 최진철 코치(41)를 만났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난 최 코치는 5살에 제주로 이사를 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14년을 지냈다.

이후 숭실대 대학생활과 국군체육부대 상무팀 시절을 제외하고 1996년 전북현대 입단부터 2007년 은퇴 이후까지 전주에서만 13년을 지내며,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두 명의 자녀도 얻어 전주는 그에게 제2의 고향이 됐다.

그가 축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사실 별다를 게 없다.

그저 평범한 어린 소년들처럼 공터에서 뛰어 놀며 공을 차는 것이 즐거웠다는 이유 단 하나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제주도에는 아이들이 할만한 놀이가 없었죠. 개구쟁이 어린 소년들이 뭘 하고 놀았겠습니까? 그냥 밖에 나가서 뛰어 노는 것밖에 없죠. 그렇게 아이들과 뛰어 놀고 공을 차다 보니 축구가 너무 좋아졌었는데 마침 제가 다니던 초등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축구부가 있었어요. 그게 계기가 됐죠.” 당시 또래 아이들에 비해 덩치가 컸던 최 코치는 체육선생님의 눈에 띄게 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나 마음에 드는 일이 있으면 고민을 안 하고 뛰어드는 성격은 그를 본격적인 어린이 축구선수로 성장시켰다.

그리고 그는 제주중앙중과 오현고를 거쳐 숭실대학교 축구부에 진학한다.

최 코치와 전주와의 첫 번째 인연은 대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가 다니던 숭실대 축구부가 전주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참가해 3위에 입상한 것. 이것이 그의 30년 가까운 선수시절 중 자신이 속한 팀이 기록한 첫 번째 입상이어서 ‘전주’라는 도시는 그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게 된다.

또 몇 년 후 그가 전북현대에 입단할 때에도 낯선 도시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좋은 기억으로 인한 친숙함을 불러일으킨다.

최 코치는 대학졸업을 앞두고 진로를 고민하다 실업팀에 입단하기로 결정하고 군 문제 해결을 위해 상무에 먼저 입단한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이러한 그의 대기만성형 자질은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뒤늦게 전북현대의 신인선수로 지명을 받게 만들었다.

12년 동안의 전북현대 선수시절, 그는 자신의 장기인 제공권과 몸싸움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자기단련과 훈련을 통해 K리그를 대표하는 수비수로 성장했으며, 주장완장을 차고부터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의 분위기를 장악하고 팀을 통솔했다.

또 ‘전북의 방패’라고 불리며 많은 지역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 아는 대로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는 홍명보 감독과 김태영 코치와 함께 한국축구 황금세대의 철벽수비진을 구축해 4강신화의 선봉에 서 온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하지만 최 코치가 국가대표로서 탄탄대로만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최 코치는 대학교 3학년 때인 지난 1993년, 처음으로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이 되면서 축구인들 사이에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다.

결국 94미국월드컵을 위한 23인의 최종 엔트리에는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는 유명한 선배들과 발을 맞추고 배웠다는 것에 만족하고 국가대표 상비군에 들었다는 것만해도 영광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는 이후 1997년 8월 브라질과의 친선경기를 통해 국가대표 A매치에 데뷔했지만,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국가대표와 인연을 맺지 못하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거스 히딩크 감독에 의해 다시 국가대표로 발탁된다.

“당시 국가대표에 뽑힐 땐 기쁨 반, 걱정 반이었어요. 그때는 이미 제 나이가 30대였고 국제대회 경력도 거의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연습경기와 각종 A매치를 경험하면서 제 실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됐고, 대표팀이 4강까지 진출하면서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았어요.” 단 한번의 실수가 실점으로 이어지는 수비수는 부담감을 많이 느낄 수 밖에 없다.

최 코치도 ‘내가 한번 실수하면 동료들 전원이 그만큼 더 고생할 수 밖에 없다’라는 오랜 중압감을 이겨낸 후 지난 2006년과 2007년 국가대표와 소속팀에서 차례로 은퇴한다.

“선수생활을 좀 더 하고 싶었기에 아쉬움도 있었고, 소속팀에는 조금 서운했어요. 누구라도 내게 그만 은퇴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하면 언제든 은퇴할 생각이었지만, 소속팀에서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주지 않고 불과 2주전에 통보했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아쉬움과 서운함을 뒤로하고 받아들였죠.” 최 코치는 은퇴 후 전주시 평화동에 어린이 축구교실인 최진철 풋볼아카데미를 열었다.

이듬해인 2008년부터는 신생팀 강원FC의 코치를 맡으며 축구지도자로서의 제2의 인생을 본격화했다.

그리고 지난해 말 강원FC의 코치직을 사임하고 대표팀 동료였던 유상철 감독의 권유로 대한축구협회 기술분과위원회 산하 유소년 전임지도자로 자리를 옮겼다.

“유소년 축구가 활성화돼야 축구 전반에 발전이 있어요. 그게 풋볼아카데미를 시작하고 유소년 전담코치를 맡게 된 이유입니다.

선수육성의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관객유치와 프로축구의 활성화에도 분명 큰 도움이 될 테니까요.” 최 코치는 예전에 비해 생활여건도, 팬들의 관심과 사랑도 높아진 지금의 전북현대의 후배선수들이 부럽다고 말한다.

또 끝으로 자신이 못해본 많은 것들을 해낸 지금의 선수들에게 존경을 표하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선수시절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에게 미안해 은퇴하면 많은 시간을 할애하리라 생각했었는데 코치로서 생활하다 보니 그 미안함은 똑같더군요. 이제는 시간적 여유가 전보다 많을 테니 가족들과 시간도 함께 보내고, 소홀할 수 밖에 없었던 풋볼아카데미에도 신경을 쓸 계획입니다.

또 4년째 미루고 있는 생활체육학 석사과정도 마무리하고 싶고요. 그리고 이왕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으니 언젠가는 프로축구팀 감독까지는 해보고 싶어요. 물론 될 수도, 안될 수도 있지만 선수시절을 보낸 전북현대에 다시 와서 뭐든 해볼 계획입니다.

그를 위해서는 제 자신이 그만한 능력이 있어야 하고, 때문에 앞으로도 꾸준히 노력해야겠죠.”/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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