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연분홍의 꽃받침에 붉은색 꽃물을 머금고 있는 이 꽃은 며느리밑씻개야. 꽃대와 줄기에 솜털 같은 가시가 많아서 설령 긁히거나 할성싶으면 금새 피가 나버려. 옛적 며느리들의 고된 삶이 그래서인지 그런 고약한 이름이 붙었더라고. 그 다음에 있는 것이 용담(龍膽)꽃. 예쁜 꽃과 달리 약용으로 쓰이는 뿌리가 쓴맛의 대명사인 곰의 쓸개보다 쓰다 해서 상상의 동물인 용의 쓸개라고 빗댄 이름을 갖게 됐어. 그리고 여기 나란히 있는 금불초와 버들잎금불초는 불당의 부처님(金佛)처럼 환하게 웃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보물산자연휴양림 강대순 회장(79)는 젊은 시절, 사진과 인연을 맺은 이후 지난 50년간 우리나라 산천에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야생화와 들풀들을 사진기 프레임과 필름에 담아왔다.

강 회장은 특히 지난해에는 카메라를 들고 전국의 온갖 이름 모를 산에 오르며 촬영한 버들잎금불초와 꿀풀을 비롯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야생화 12점을 담은 사진전을 갖기도 했다.

강 회장은 여든의 나이를 바라보는 지금도 우리나라 산천에 널린 야생화들을 기록한 책을 뒤적이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직접 촬영해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야생화와 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지식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는 운정(雲正) 강대순 회장의 50년 야생화별곡을 들여다본다.

1934년, 현재 전주시 송천동 지역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강 회장은 지난 팔십 평생을 이곳에서만 지내왔다.

과수원을 운영하던 강 회장의 아버지는 당시 ‘강씨 집안의 땅을 밟지 않고 전주시내로 들어갈 수 없다’고 세간에 회자될 정도로 큰 부자였다.

이러한 배경 속에 성장한 강 회장은 전북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1972년부터 건설업에 종사하며 전북대 경영대학원 과정도 수료했다.

강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비사벌건설을 198~90년 당시에는 지역을 넘어 국내굴지의 건설회사로 성장시키는 등 ㈜비사벌그룹을 경영하던 성공한 사업가였다.

또 전주일보 사주와 전주시의회의원을 역임하는 등 언론과 정치분야를 비롯한 사회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성공가도를 달리던 그의 삶은 비사벌건설이 IMF의 여파가 몰아친 지난 1998년, 연대보증관계에 있던 대전 경성건설의 부도로 인해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변화하기 시작했다.

“내가 72년에 건설업을 시작해서 그때까지 비사벌건설에서 만든 보금자리만해도 1만 세대는 넘을 거야. 주택업이라는 것은 분양이 안되면 자금유통이 막히고, 그렇게 되면 회사가 어려움에 처하는 것은 불 보듯 뻔하지. 당시 IMF의 여파로 분양이 안돼서, 비사벌하고 연대보증했던 대전의 경성건설이 부도가 났어. 그 여파로 비사벌건설도 문을 닫게 됐고. 아마 전북지역에서는 비사벌이 최초의 법정관리 사례일꺼야.” 강 회장은 이처럼 회사가 갑작스런 부도를 맞게 된 이후, 자신이 젊은 시절 매료됐던 야생화와 사진에 더욱 매진하기 시작했다.

전국을 돌며 사진을 찍고, 지나가던 길가에 힘겹게 피어있는 이름 모를 들꽃들도 사진에 담고, 서적을 뒤적거리며 끝내는 그 꽃의 이름과 성격을 파악해냈다.

업무상 해외에 나갈 일이 있으면, 그때에도 잠시 틈을 내 그 나라의 문화 유적과 풍물, 들꽃의 사진을 찍는 것을 결코 빼먹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야생화가 끊임없이 펼쳐진 들풀의 향연을 꿈꾸며 완주군 동산면에 ‘보물산자연휴양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익산IC나 완주IC에서 고산면을 뒤로하고 대야저수지와 동상저수지마저 지나치면, 주말이면 산을 찾는 등산객들에게 천혜의 자연경관과 738m의 낮은 산세에도 불구하고 정복하기 어려운 험난한 코스를 자랑하는 완주 장군봉을 만나게 된다.

강 회장은 그와 인근한 완주군 동상면 신월리 51번지의 50만여㎡ 대지를 자연휴양림으로 승인 받아 곳곳에 동식물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또 등산객들이 사진촬영도 하고 자연을 벗삼아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야생화 단지도 조성했다.

“자연휴양림은 경제적 이득을 바래서도 안되고,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야. 큰 기업이나 법인, 도나 시에서 사회사업으로나 해야 하는 일이지.” 강 회장은 언제부터인가 ‘울창한 나무’와 ‘맑은 물’, 그리고 ‘장엄한 바위’의 세 가지 보물을 간직한 이곳 보물산에 네 번째 보물인 ‘야생화’를 하나 둘씩 숨겨두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야생화 중에서 국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것은 몇 종 안돼. 서양화에 비해 그리 화려하지도 않고 온 들판에 널려있으니 소외를 당할밖에. 나는 풀꽃과 나무꽃을 포함한 모든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보물산은 이미 국화과의 야생화인 벌개미취의 최대군락지가 됐어. 매제가 한 주 가져다 준 것을 심고, 그게 번식해서 이만큼 불어난 것이지. 그리고 전남 구례에서 지리산 화엄사 가는 곳에 있는 종묘원에서 얻은 150종의 야생화도 옮겨놨어.”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자신의 아들들이 운영하는 건설회사의 건설현장들을 직접 누비며 각종 조언과 쓴 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강 회장은 앞으로의 1년을 이곳 보물산에서 야생화들과 제법 잘 어울리는 배경이 되어줄 숙박시설 건설을 둘러볼 계획이다.

“5월부터는 이곳 휴양림에 야생화의 이름을 가진 목조숙박시설을 지을 거야. 예를 들면 연자주빛 벌개미취를 닮은 숙박동에는 ‘벌게미취’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변에 벌개미취 군락을 조성하는 거지. 노란 ‘금불초’ 사이에는 금불초를 닮은 건물도 짓고, 선한 자주빛깔의 ‘붓꽃’동도, 적갈색의 ‘백양꽃’동도 지을거야.”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편집=류경임 기자

저작권자 © 전북중앙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