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정운천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
휴먼스토리/정운천 전 농수산식품부 장관
  • 김근태
  • 승인 2012.04.19 21: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온 국민의 관심 속에 치러진 지난 4.11총선에서 새누리당이 과반 이상의 의석인 152석을 차지하며 끝났다.

특히 이번 총선에는 광주 서구을의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와 대구 수성갑에 출마한 김부겸 의원, 그리고 전주 완산을 지역구에 출마한 정운천 후보 등 3인이 단일정당 일색의 지역정치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출사표를 던져 전국적으로 많은 지지와 관심을 받았다.

세 후보는 비록 결과적으로는 선거에서 패배했지만 지역주의 타파를 위한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며 ‘아름다운 바보’라고 세간에 여전히 회자되고 있다.

이중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한 정운천 후보는 지난 18대 총선에서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6%의 득표율에 머물렀던 전북정치권에 첫 출사표를 던진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의 도지사선거에서 18.2%를 득표한 데 이어, 이번 4.11 총선에서는 35.8%의 괄목할만한 지지율을 획득했다.

지난 1954년 고창군 부안면 인촌마을에서 태어난 정 전장관은 탄생과 동시에 자신을 ‘바보 정운천’으로 만든 첫 번째 멘토인 인촌 김성수 선생을 만나게 된다.

대한민국 2대 부통령을 지낸 인촌 김성수 선생은 동아일보를 창간해 초대 주필을 역임하고 고려대를 설립한 인물로 정 장관이 태어난 방이 인촌 선생이 태어난 방이었던 것. 그러한 인연으로 정 장관은 단 한번도 대면하지 못한 인촌 선생을 첫 번째 멘토로 삼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56세의 늦은 나이에 절 낳으셨는데, 아버지께서는 서울로 이사한 인촌 선생의 생가도 함께 관리하셨어요. 부친께서는 제가 고창이 배출한 큰 인물인 인촌 선생과 같은 방에서 태어났다며 ‘너도 인촌 선생과 같은 큰 인물이 될 수 있느니라’라고 항상 말씀하셨죠.” 정 장관은 이후 어려워진 가정형편 속에서도 익산 남성고와 인촌 선생이 설립한 고려대 진학을 목표로 공부했으며, 삼수 끝에 고려대 농업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인생의 갈림길에서 그를 이끌어준 것은 인촌 선생의 “인생의 진로를 결정할 때에는 가장 첨단을 달리는 곳이나 아니면 가장 낙후된 곳을 우선적으로 고려하라. 그만큼 성공의 여지가 많고 개발의 잠재력이 크다”라는 말씀과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이었다.

정 장관은 농업이 낙후돼있는 만큼 개발의 여지가 크다고 판단해 전남 해남으로 내려가 농업에 종사하기 시작했다.

또 재배작목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보급화되진 않았지만 당시 국제석학들 사이에서는 ‘21세기 꿈의 과일’로 불리던 키위를 택했다.

당시 키위는 막 뉴질랜드에서 묘목을 들여와 국내에 보급되던 찰라. 정 장관은 키위묘목을 보급하고 직접 재배하기 시작했다.

“해남에서 키위 재배가 자리잡고 정착될 무렵인 지난 1989년, 정부에서 키위를 수입개방품목에 포함시켜 이듬해부터 개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제 막 자리를 잡아가던 키위재배농가에는 날벼락이었죠.” 키위수입이 개방된 1990년, 서른 일곱의 정운천은 인생의 두번째 멘토인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된다.

어려움에 닥친 그와 해남의 키위 생산농장에는 임진왜란 당시 열 두 척의 배로 수백에 달하는 왜군 함대를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불굴의 의지가 필요했던 것. 그는 ‘조직화만이 살 길’이라고 판단하고 전국의 키위재배농가를 하나로 모아 전국키위협회를 설립하고 키위를 ‘참다래’라는 국산 브랜드로 바꿨다.

또 우리나라 최초의 농민주식회사인 참다래유통사업단을 설립하고 생산에서 저장, 유통, 가공, 판매에 이르는 농업경영 일원화를 위한 새 모델도 창조했다.

이순신 장군이 가르쳐준 불굴의 의지와 단결력에 대한 가르침은 그가 초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역임할 때까지 영향을 미친다.

“장관 재임 당시 거북선 농업 5대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5만의 젊은 인력을 농촌에 내려 보내는 농어촌 뉴타운 정책과 간척지에 대규모 농업회사를 설립하는 것, 농어촌 유통 고속도로 확충, 품목별 국가 대표조직 마련하는 것 등이 그 내용인데 유통구조를 바꿔 생산자와 소비자가 모두 이익이 돼 농업을 살릴 수 있는 정책이었다고 자부합니다.

장관재임 6개월 만에 촛불정국의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해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죠.” 퇴임 이후 정 장관은 100일간 우리고유의 맛과 멋, 농식품 발전 방안을 찾기 위해 전국 순례에 나섰고, 그때 방문한 안동의 도산서원에서 그의 오늘을 송두리째 꿰뚫고 있는 마지막 멘토를 만나게 된다.

도산서원에 피어난 한 송이 매화와 함께 당나라 고승 황벽선사가 쓴 ‘불시일번한철골 쟁득매화박비향(不是一番寒徹骨 爭得梅花撲鼻香)’이라는 시구를 접하게 된 것. ‘뼛속에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았다면 어찌 매화꽃이 코를 찌르는 짙은 향기를 얻을 수 있으리’ 라는 이 구절은 그가 4.11 총선의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지역장벽 허물기’라는 신념을 가져다 주고, 패배 이후에도 ‘현재의 실패와 고난이 진한 매화향기와 같은 내일을 있게 할 것’이라는 생각에 좌절치 않게 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총선 당시 정 장관은 CBS의 라디오인터뷰에서 ‘자신을 제외하고 꼭 당선이 됐으면 하는 후보’를 묻는 질문에 같은 새누리당의 후보가 아닌 대구수성갑에 출마한 민주통합당의 김부겸 후보를 지목했다.

같은 신념으로 그 또한 적진이라고 표현된 대구지역에 출사표를 던진 이유에서다.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지역장벽을 깨뜨리면 안 되겠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지난 두 번의 선거를 치렀습니다.

신념이 생기면 나머지 모든 문제는 뛰어넘게 돼있어요. 다른 정당에 소속된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은 물론, 시·도의원 하나 없는 이곳에 총력을 다해 뛰어들어 꽤 의미 있는 성과를 얻긴 했지만, 결과 자체를 바꾸진 못했죠. 하지만 많은 분들의 지지를 통해 정당의 지역화를 허물 수 있는 물꼬는 텄다고 생각합니다.”

정 전장관은 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지해준 유권자들에게 감사를 표한 후, 승자인 민주통합당 이상직 당선자에게도 “승리를 축하하며, 앞으로 지역발전을 위해 힘써 일해 주시길 부탁 드린다”고 말했다.

/글=김근태 기자·사진=김얼 기자·편집=류경임 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