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고도 전주를 가장 한국적인 도시, 삶의 기쁨이 넘치는 창조적 문화예술도시로 구현시키기 위해 지난 2006년 출범한 전주문화재단.

전주문화재단은 이후 전통문화자원의 대중화와 산업화, 그리고 세계화를 위해 전주한옥마을에 소리문화관과 부채문화관, 완판본문화관 등 3대 문화시설을 설립하고 지역문화예술의 창조역량 강화와 전통문화의 계승 및 발전을 위해 힘써왔다.

또 전북방문의 해를 맞이한 올해는 지난 1월부터 전주를 찾는 관광객들을 위한 한옥숙박시설 ‘삼도헌(三到軒)’을 임대 운영하며 내방객들의 눈(眼到)과 입(口到), 마음(心到)을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전주문화재단의 제3대 이사장으로 취임한 유광찬 총장(전주교대). 현재 전주시를 문화적 전통은 물론 현재와 미래가 공존하는 문화예술도시로 변화시키기 위해 동분서주중인 유 총장을 만났다.

완주군 봉동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유 총장은 완주중학교 재학시절 가난한 가정형편으로 인해 고교 진로를 두고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당시 완주중의 교련수업을 담당하던 익산 원광고 교련교사의 소개로 근로장학생으로 원광고에 진학할 수 있었다.

청소 등의 근로봉사를 하며 3년간의 고교과정을 무사히 마친 유 총장은 이후 전주교대에 진학했으며, 교대 학생에 대한 병역특례제인 학생군사교육단(RNTC) 제도에 따라 졸업 후 5년 1개월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교사로서 제 첫 번째 부임지는 모교인 완주군 봉서초등학교였습니다. 교사로 일하면서 대학원 진학이라는 목적을 위해 4년제 대학 과정을 이수해야 했는데 다행히 영생대(현 전주대) 편입시험에 합격했어요.

당시에 쌀 한 가마니가 3만원이었는데, 교사 초봉이 9만 8천원이었어요. 이것저것 해서 월급에서 3만원을 공제하고 6만 8천원이 남았는데, 대원 등록금이 40만원이 넘었어요. 그래서 교육장님을 찾아가 ‘나중에 갚겠으니 빌려달라’고 사정했죠.”

초임교사였던 유 총장이 완주교육청의 최고 책임자인 교육장과 별다른 친분이 있었을 리는 만무하다. 아마도 초임교사로서 부임 인사하면서 겨우 일면식이나 있던 정도였을 터. 젊은 유 총장의 이 같은 용기는 그에게 편입을 위한 등록금을 선물했다.

“교육장이 초임교사에게 월급의 몇 배나 되는 큰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정말 감사한 일이죠. 훗날 교육장님께 빌린 원금하고 제 스스로 책정한 이자를 들고 찾아 뵀더니, 교육장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이자는 그냥 돌려주셨어요.”

유 총장은 이 같은 도움으로 전주대에서 학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고, RNTC로 인한 교사로서의 의무재직기간인 5년 1개월 보내면서 방송통신대학에서 교육학학사 과정도 수료한 후 세종대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지난 1995년 9월에는 모교인 전주교대로 돌아와 전임강사 10년과 조교 3년을 포함해 총 16년 동안 후배들을 양성해오다 지난해 2월에는 마침내 전주교대 출신으로는 50년 만에 처음으로 총장에 취임했다.

유 총장이 이처럼 고교진학 시절부터 학사과정을 수료할 때까지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때 그때의 현실과 부딪혀 최선을 다하라. 세 번 해서 안되면 포기하라’는 그의 좌우명 덕분이었으며, 이는 그의 오늘날과 앞으로도 끊임없이 계속될 그만의 인생철학이다.

“만약 제게 어떠한 어려운 일이 닥친다면 저는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부딪힙니다. 누군가는 정말 그 일에 최선을 다해보지도 않았으면서 현실을 원망하곤 하는데, 그건 잘못된 거라 생각해요. 진정으로 최선을 다한다면 못 해낼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설령,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세 번을 부딪혔는데도 해결이 안 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을 과감히 포기하는 용기도 필요합니다.”

총장에 취임한 후 그는 학교운영 목표를 대학의 주체인 학생중심으로 설정했다. 졸업생 취업률 80%과 장학금 수혜율 90%를 달성하는 것을 목표로 설정하고, 졸업생들을 위해서 동문 네트워크 강화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왔다.

총장으로서 직접 전북지역은 물론 타 지역에서 입시설명회를 진행한 노력은 입학생 수능시험 커트라인이 15점 오르는 등 학교위상을 높이는 결과를 가져왔고, 타 지역에서 근무하는 동문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기 위한 노력과 동문 네크워크를 구축한 것은 모교 발전기금의 비약적인 증가로 이어져 장학금 수혜율도 목표치에 근접한 86%로 치솟았다.

학교위상 재고와 높은 장학금 수혜율은 유 총장이 긍정적 화학작용을 통해 졸업생 취업률도 높아질 거라 기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지난 3월, 유총장은 전주문화재단 이사장에 취임했다.

“송하진 전주시장님께서는 평소 전주교대 발전을 위해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시장님의 그간의 도움에 조금이나마 보답하자는 뜻에서 이사장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수락하게 됐습니다. ‘열심히 배우겠다’는 심정으로요. 이사장을 맡고 보니 현재 전주문화재단이 가진 문제점은 크게 세가지인 것 같습니다. 첫째는 홍보가 부족하다는 점이고, 그 다음으로는 재단 사무실이 한옥마을에 위치한 3대 문화관과 너무 멀리 떨어져있다라는 것. 마지막은 이익창출이 안 된다는 점이죠. 지금은 그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의 목표입니다.”

유 총장은 지난 전주교대 총장선거 당시 결과에 불복한 일부 교수들이 흠집내기를 위해 총 20여 차례에 걸쳐 고소와 고발을 했어도 그들을 원망하지는 않는단다. ‘그들은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과 ‘현재에 최선을 다하고 미련을 남기지 말자’라는 생각에서다.

“통일신라시절 원효대사가 어두운 밤에 물을 시원하게 마시고 아침에 일어나보니 해골바가지에 담긴 물인 것을 알고 토악질을 했다는 것은 사람의 행복이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제가 늘 행복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은 불행은 비교하는 데서 온다는 사실을 항상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만큼 철학’이라는 게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하는 구나’와 이해를 담은 ‘~수도 있겠지’, 그리고 더 나쁜 일이 아니라는 데 대한 ‘감사’의 세가지를 뜻하죠. 예를 들면 한 학부모가 공부는 안하고 온종일 게임만 하는 아이를 보게 됩니다. 이 경우 대부분은 아이를 무작정 혼내기 마련이죠. 하지만 ‘아 우리아이가 게임을 하고 있구나’라며 있는 그대로를 바라봐 주고, ‘한참 놀고 싶은 나이니 그럴 수도 있겠지’라며 이해해보려고 노력하고, ‘그래도 우리 아이가 나쁜 짓을 하거나 가출을 하지 않으니 얼마나 감사해’라고 생각한다면 학부모와 아이 둘 다 보다 행복해 질 수 있지 않을까요?”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편집=류경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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