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송화수 삼신인삼 가공영농조합법인 대표
휴먼스토리/송화수 삼신인삼 가공영농조합법인 대표
  • 김근태
  • 승인 2012.05.31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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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고수장(山高水長)의 고장 진안군은 마이산을 비롯한 수려한 자연경관은 물론, 금강과 섬진강의 발원지로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청정지역으로 유명하다.

그러한 이유로 이곳 진안에서 재배되는 인삼은 여타지역에 비해 향이 진하고, 항암효과에 탁월한 것으로 알려진 사포닌 성분이 높다.

진안은 또 최근 밭에서 캐낸 자연상태의 4~6년근 수삼(水蔘)을 박피하지 않고 증숙한 후 건조·숙성시킨 홍삼(紅蔘)을 대표하는 지역브랜드이기도 하다.

진안홍삼의 이 같은 발전에는 삼신인삼 가공영농조합법인의 송화수 대표(80)와 같은 지역민들의 노력이 있었다.

특히 송 대표는 40여 년간 직접 인삼을 재배하고, 전북인삼협동조합 등 인삼관련 행정 업무로 16년을 보내고 정년후인 지난 1996년, 64세의 비교적 늦은 나이에 인삼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어 1999년에는 당시 농림부로부터 인삼가공분야 신지식농업인장을 수상하기도 한 인물. 자신의 조부를 시작으로 자녀 세대에 이르기까지 4대째 인삼농사를 이어오고 있고, 현재 삼신인삼에서 가공되는 ‘송화수 홍삼’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홍삼 브랜드로 손꼽히고 있지만 사실 송 대표가 처음부터 인삼을 주업으로 삼을 생각은 아니었다.

“저는 연안송씨(延安宋氏) 집성촌인 장수군 천천면 연평리에서 태어났는데, 소농출신의 애환이라는 것은 말로 다할 수가 없어요. 그때만해도 집에서는 특화작목인 인삼만 재배한 게 아니라 과수도 심고, 닭과 돼지, 소도 키우던 복합영농의 형태였죠. 여러 가지를 하다 보니 전문성도 없고 뭐 하나 제대로 됐겠어요? 가난한 시골 사람이 그곳을 탈피하는 것은 공장에 취직하는 것뿐이었어요. 그래서 공고 방직과를 나와 방직회사에 취직해 이곳을 벗어나자는 생각뿐이었죠.” 하지만 당시는 연줄이 닿지 않으면 방직회사에 취직조차 힘들던 시절이었기에 그의 소박했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늦은 나이에 공고를 졸업하고 군 복무까지 마치자 그의 나이는 어느덧 스물 여섯. 스물 여섯의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부모님의 농사일을 거드는 일뿐이었다.

“진안에는 스물여덟살 때 왔어요.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공무원이 됐죠. 하지만 과수원을 해보자는 새로운 꿈이 생긴 제게 공무원은 생계유지를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송 대표는 밖에서는 지방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집에서는 다양한 과수를 심고, 인삼을 재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공무원으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야 했던 송 대표에게 일꾼을 감독할 시간적 여유나 전문지식은 부족했다.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송 대표의 삶을 바꿔놓았다.

“서른 살 때 과수원에서 키운 자두나무를 한 트럭 가득 내다 팔았는데 그때 번 돈이 고작 8만원이었습니다.  인삼씨 한말이 25만원이었던 것에 비해 턱없이 작았죠. 집에 돌아와 심어둔 과수 밭을 전부 갈아 엎고 그때부터 인삼만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는 약 396㎡(120평) 규모의 밭에 인삼만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4년근 인삼을 처음으로 수확하자 쌀 100가마니에 해당하는 4~50만원의 소득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진안에서 인삼을 재배해 팔면, 금산이 이를 가공하고 부가가치를 창출해 이익을 거의 독점하던 시절. 송 대표는 지역민들이 인삼을 통해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북인삼협동조합으로 자리를 옮겨 그때부터 15년 5개월 동안 일했다.

“인삼조합에 근무할 때 1년 6개월간 금산조합에 파견 근무를 간 적이 있었습니다.

금산군은 삼 재배가 아니라 가공과 유통을 해서 잘사는 것을 보게 됐습니다.

또 군 전체가 마치 인삼 하나만을 시장을 형성한 듯 했어요. 진안에도 시장을 형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죠. 또 진안군이 잘살기 위해서는 재배만이 아니라 가공과 유통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송 대표는 진안으로 돌아와 수삼센터를 마련하고 진안인삼의 위상을 높이는 많은 일들을 한 후 지난 1993년 12월 31일, 정년을 맞아 은퇴했다.

그리고 인삼의 국가전매제가 해제된 1996년, 64세의 그에게 인생의 3막이 펼쳐졌다.

‘인삼 삼(蔘)’자에 ‘믿을 신(信)’자를 더해 삼신인삼 가공영농조합법인을 설립한 것. 삼신인삼은 설립 후 2년 만인 1998년에는 홍콩과 대만, 미국, 호주, 동남아 등에 수출하는 쾌거를 이룬다.

송 대표는 또 청정 진안에서 친환경유기농법으로 재배된 인삼과 첨단설비, 독창적인 추출공법을 갖춰 홍삼의 효능을 극대화시켰다.

그리고 진안홍삼에 대한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해왔다.

“홍삼은 종류도 많고 사포닌 등 성분함량과 가격도 천차만별입니다. 하지만 ‘싼 게 비지떡’이라고 약효가 좋은 홍삼은 비쌀 수 밖에 없습니다. 제품을 싼 값에 출시하라는 것은 홍삼의 질과 약효를 낮추라는 뜻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진안홍삼이 비싸더라도 의사나 한의사, 약사와 같은 의학전문가와 인삼관계자에게 인정받고 그들이 애용하는 인삼을 만들어 신뢰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EU시장을 개척하고 싶은 게 꿈이라는 송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인삼’하면 금산이 떠오르더라도 ‘홍삼’하면 진안이 떠오를 수 있도록 진안은 홍삼 하나를 전문적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현재 홍삼에 대해 잘못 길들여진 소비자들의 입맛도 변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신뢰할만한 좋은 제품을 구매해 3개월간 꾸준히 먹으면 진짜 홍삼의 맛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7살 때 할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집 앞 야산 인삼 밭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후 지난 70여 년을 인삼과 함께해 이제는 흙 속에 재배되는 삼의 냄새만 맡아도 상태를 알 수 있다는 달인지경에 다다른 송 대표. 그는 끝으로 다음과 같은 기대감을 표했다.

“농약을 치고 약을 준 인삼은 향이 진할 수가 없어요. 자연에서 거친 풍파와 병충해 등을 겪고 이낸 인삼만이 향기가 진해요. 비교적 가격이 비싼 진안홍삼은 지금은 중국산이나 다른 지역의 값싼 홍삼에 고전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뛰어난 효능과 정직함으로 인정받을 날이 올 것입니다.”

 /글=김근태·사진=이상근·편집=류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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