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스토리 - 정영택 온누리안과 원장
휴먼스토리 - 정영택 온누리안과 원장
  • 김근태
  • 승인 2012.09.13 21: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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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밝은 세상을 위하여'…인라인타는 의사선생님
▲ '인라인스케이트를 탄 의사선생님' 정 원장은 인라인대회, 안과진료, 안구이식 수술, 안은행 운영 등 바쁜일정을 보내고 있다.
온누리안과 정영택 원장(52) ‘더 밝은 세상을 위하여’ 온누리안과 정영택 원장(53) (사진있음=사진부폴더)   2012 전주월드인라인마라톤대회가 오는 16일 오전 7시 30분, 전주종합경기장 일원에서 열린다.

FIRS(국제롤러경기연맹)과 대한롤러경기연맹이 주최하고, 전주시통합체육회와 전주시통합인라인롤러연맹 등이 주관하는 이번 대회는 어느덧 10회째를 맞으며, 체육엘리트와 생활체육 동호인 등 4천여명이 출전하는 전국최대규모의 인라인스케이트 대회로 성장해왔다.

지난 2003년 1회 대회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조직위원장을 맡아 현재 대회준비에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는 정영택 위원장을 만났다.

정 위원장은 특히 지난 6월 처녀 출전한 공식대회인 인천대회 21㎞ 구간에서 당당히 36분 40초대의 기록으로 완주해, 이번 대회에는 42㎞ 구간에 출전해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함께 기량을 겨룬다.

전주시 중화산동 백제로변에 위치한 온누리안과 원장이 본업인 정 원장이 인라인스케이트(이하 인라인)에 입문하게 된 것은 인라인이 바쁜 일정 속에서도 잠시 짬을 내면 할 수 있고,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운동이기 때문.

“말 그대로 밥만 먹고 환자를 보던 레지던트의 생활을 마치고 안과전문의 시험에 합격했어요. 그때부터 건강을 위해 취미생활과 운동을 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가 처음 시작한 운동은 스키. 지난 1995년 2월, 무주로 가족여행을 떠난 정 원장은 레지던트 생활로 인해 그곳에 스키장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게 됐고, 처음 타본 스키에 매료됐다.

“처음 탔을 때가 스키시즌의 막바지인 2월이어서 이듬해부터 본격적으로 스키를 타러 다녔습니다.하지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병원을 지켜야 해서 제가 유일하게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일요일 뿐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크리스천이라 주일에 교회에는 반드시 가야 해요. 결국 스키를 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요일 새벽 세시에 혼자 일어나 2시간 30분 동안 차를 몰고 무주에 가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 타고 다시 전주로 돌아와 11시 예배에 참석하는 것뿐이었죠.”

하지만 스키는 겨울철에만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 정 원장은 1999년부터는 운동을 위해 인라인을 구입하고 틈이 나는 대로 주차장이나 인근 공원 등에서 타기 시작했다.

그리고 전주시 통합 인라인 롤러연맹 회장을 맡아 2003년부터는 동호인들을 위해 인라인마라톤대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인라인은 처음 탈 때 누군가의 손에 의지해야 하는 운동이자, 엄마아빠 손을 잡고 온 가족이 할 수 있는 좋은 운동입니다. 또 많은 가정에서는 아이가 부모보다 더 잘 타 자녀가 부모를 가르치고 이끌며 가족간의 유대에도 좋아요.

인라인 저변확대를 위해 2003년 시작된 전주대회는 2005년부터 국제대회로 열렸습니다. 올해는 대회 10주년을 맞는 뜻 깊은 해입니다. 전주대회는 또 전국 최대 규모이자 인라인을 타고 도심지를 달릴 수 있는 유일한 인라인대회이기도 합니다.”

정 원장은 또 본업인 안과전문의로서는 지난 2001년 개인병원을 개원한 이후, 매년 3~40명씩 총 300여명의 전북지역 소방관과 경찰관들에게 무료 라식 및 라섹 수술을 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2001년은 서울 홍제동 주택화재로 총 6명의 소방공무원이 안타깝게 순직한 사고가 발생한 해로, 정 원장은 방화복을 입고 화재현장에 출동하는 소방관들 중 시력이 좋지 않은 소방관들이 안경도 쓰지 못한 상태에서 연기와 치솟는 불길에 시야까지 좁아져 사고위험이 가중될 위험이 있다는 생각에 이 같은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한다.

정 원장이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무엇보다 예수병원에서 행정직으로 근무하던 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가정형편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그가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하는 예수병원에 놀러 가면, 병원에는 늘 먹을 것이 많았고 그 맛있는 것들은 가장먼저 흰 가운을 입은 의사들에게 먼저 돌아갔다는 것.“어린 시절부터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어요.

놀이터와 같았던 병원에 대한 좋은 추억과 흰 가운을 입은 의사에 대한 어린 마음의 경외심. 또 의사라는 직업은 좋은 일을 하면서 좋은 대접을 받는 몇 안 되는 직업이라 생각했어요.” 전북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인턴과정을 거친 후 1990년 전공으로 안과를 선택했다.

2001년까지 전북대 의대 교수를 지낸 정 원장은, 같은 해 후배들과 함께 전주푸른안과를 개원했다.

또 전주시 서신동에 분원인 정영택안과를 운영하다 지난 2009년 후배들에게 푸른안과를 맡기고 분리해 현재 온누리안과를 운영하고 있다.

온누리안과는 특히 장기이식등록기관이자 장기이식의료기관으로 지정돼, 지방병원으로는 드물게 수백 차례에 달하는 안구이식수술을 해왔다.

그에 따라 정 원장은 기증자의 시신에서 이식안구를 적출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각종 진료를 하는 등 매일같이 바쁜 일정을 보내왔다.

“온누리안과는 개인병원 중 거의 유일하게 병원에서 안은행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안은행에는 1년이면 60~80개의 안구가 기증되는데 절반은 직접 이식수술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긴급한 환자들을 위해 전국으로 보내고 있어요. 하지만 현재 안구기증은 수술필요환자의 10분의 1에 불과합니다.

연간 안구이식 수술을 받아야 할 환자는 5천 명에서 1만명에 달합니다. 그러나 1년에 수술을 받는 환자는 1천명도 채 안돼요. 그 중 국내각막은 500여 개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기부금 명목의 돈을 내고 수입한 각막이죠.” 정 원장은 끝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안구는 사후 이식이 가능하고 익사사고 사망자나 제초제 중독 사망자도 기증할 수 있을 정도로 비교적 이식에 자유로운 편입니다.

그러나 사망 후 화장률은 70~80%로 높아진 반면 장기기증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의식은 이 일을 시작한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어요.

특히 안구는 기증을 기피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러나 안구기증을 통해 누군가는 난생 처음 아름다운 세상을 바라볼 수 있고, 또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눈이 보이지 않아 집 안에서만 평생 갇혀 살아야 했던 여자 환자가 있었습니다. 단 한번도 홀로 집 밖에 나와보지 못하고 안에서 아이만 낳아 길러야 했던 그녀가 수술 후 병원에 찾아와 자신이 살던 장계에서 버스를 타고 혼자 왔다며 기뻐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해요. 안은행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1년이면 1억 정도의 적자가 생깁니다. 그럼에도 유지하는 것은 이 일이 아무도 가보지 않은 곳이고, 가봐야 별다를 것이 없는 곳인 줄 알면서도 누군가는 꼭 가야 할 길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글=김근태기자·사진=이상근기자·편집=류경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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